피렌체 1900년 - 아르카디아를 찾아서
베른트 뢰크 지음, 안인희 옮김 / 리북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특히 르네상스 미술-피렌체는 하나의 이상향과도 같은 곳이다. 이 도시 출신의 수많은 미술가들의 이름은 미술 애호가들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피렌체에 가 보지 못한 사람은 그 별처럼 빛나는 작품들로 가득 찬 도시에 대한 꿈을 꾸고, 가 본 사람들은 결국 이 예술의 수도의 휘황함에 무릎을 꿇고 만다.
그래서 대개 피렌체에 대한 책은 1500-1600년을 전후로 한 기간들을 다루기 마련이다. 천재들의 세기, 르네상스가 꽃피고 메디치 가문의 역사가 유럽의 역사와 얽혀 들어가는 시기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1900년, 이른바 세기말 세기초의 벨 에포크 시기의 피렌체를, 그것도 피렌체인들의 눈이 아니라 이방인들의 눈에 비친 피렌체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시기로부터 꼭 110년이 지난 지금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래서 마치 이중의 필터를 통해 피렌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우리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이방인들-대개는 아비 바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독일인들, 그리고 몇 명의 영국인, 미국인, 스위스인 등-보다도 어떤 의미로는 더욱 이방인이며 피렌체의 영광의 세기로부터는 더한층 멀어진 시대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르네상스의 도시의 방문객들, 때로는 피렌체를 제2의 고향으로 선택한 사람들과 어떤 공통점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그들이 보는 피렌체는 1900년의 피렌체가 아니라 과거의 피렌체, 그보다도 그들이 머릿속에 간직한 어떤 이상향으로서의 피렌체라는 사실이다. 지금 피렌체로 여행을 가더라도 우리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이 도시를 볼 것이 틀림 없다. 말하자면 사보나롤라의 처형 그림에 등장하는 피아차 델라 시뇨리아가 지금과 얼마나 똑같은지를 느끼면서 감탄하는 것 따위이다. 하지만 ‘그 때’ 와 똑같아 보이는 피렌체 역시 현대화의 길을 거치면서 훼손되고 변화되었음을 이 책은 알려 준다. 지금의 우리처럼 예술의 이상향을 찾아 이 도시로 온 일단의 외국인들은 20세기가 가져온 속도와 변화의 와중에서 때로는 저항하고 대개는 변화에 눈을 감지만 결국 르네상스의 피렌체는 자신들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 책은 아비 바부르크라는, 미술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한 번쯤 이름을 들어 봤을 법한 독일계 유태인 미술사가, 미학자가 피렌체와 처음 조우하고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피렌체에 정착했다가 다시 독일로 돌아가는 인생 여정과 피렌체라는 도시의 변화를 교묘히 엮어 놓은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우리는 바부르크와 그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묘사를 통해 르네상스 미술에 관한 학자들의 의견, 1900년의 피렌체에 살고 있던 예술가들, 미술 시장의 활성화와 함께 피렌체와 토스카나의 미술품들이 발굴되고 팔려 나가는 모습, 현대화와 함께 피렌체가 어떤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 등, 한 시대의 여러 모습들을 관찰하게 된다. 결코 행복했다고는 할 수 없을 바부르크의 말년과 함께 아련한 슬픔이 느껴지는 것은 그 찬란한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피렌체 역시 지상의 장소일뿐 아르카디아는 아니라는 것, 언제나 과거를 향한 도시가 이 속도의 시대에 여전히 거기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요구와 변화의 요구 사이에서 영원히 갈등하게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다는 것 때문이다- 1900년의 사람들은 짐작도 못 할 정도로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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