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중세사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후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이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제목 그대로 봉건제라는 독특한 제도 하에 형성된 중서부 유럽의 한 시대를 고찰한 이 책은 중세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게 해주는 책이다. 따라서 시간의 흐름을 따라 기술된 역사책과는 여러 모로 다른 느낌을 준다. 상당한 분량의 1권은 봉건제의 특징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된 계약적이면서도 종적인 관계의 망에서 찾고, 그것이 원래 생겨나게된 사회적 압력요인과 본래의 정신, 그리고 그것이 변질되게 되는 과정을 꼼꼼하게 보여준다. 1권의 반정도 분량인 2권에선 통치 제도를 중심으로 하여 봉건제가 어떻게 권력의 분화에 영향을 미쳤고, 국가권력과의 관계는 어떠했는지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로마 제국의 붕괴 후 메로빙거와 카롤링거의 왕국들을 거치면서 계속되는 만족들의 침입으로 약화된 왕권은 결국 공권력의 공백이라는 사태를 낳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일신의 자유를 담보로 해서라도 보호를 구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 그 시대적 요청이 만들어낸 독특한 제도가 봉건제이며 이것은 군주와 가신간의 신종선서라는 의식을 통해서 상호간 보호와 봉사라는 가치를 교환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아래로는 농노로부터 종국엔 국왕에게까지 이어지는 이 종적 인간관계의 망이야말로 봉건제의 핵심이었으며 여기에 봉사의 대가로 주어지는 봉토와 장원이라는 그 시대 특유의 경제 활동에 대한 내용도 빠질 수 없다. 블로크는 이러한 큰 줄기를 놓고 그 시대의 경제, 사회상의 여러 면모들을 꼼꼼하게 복원하여-그 시대 사람들의 정신세계와 심리적 현실까지-중세를 하나의 막연한 과거로부터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복합적인 상으로 만들어준다. 사건으로서의 역사가 아닌 하나의 사회적 현실로서의 역사를 보게 해 주는, 흥미진진한 책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