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집
헨리 제임스 지음, 이채윤 옮김 / 데미안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유령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으스스한 공포와 신비스런 분위기, 그런 것일 것이다. 이 소설은 유령이 출몰하는 집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사실 그다지 공포스럽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것은 모호함이 주는 긴장감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여성이 어느 한적한 시골의 대저택으로 두 아이를 가르치러 떠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는 그 '반 정도는 사람이 기거하지 않는 커다란 저택'에서 대낮에도 출몰하는 유령들과 조우하고 그 유령들이 바로 그녀의 두 학생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유령들의 존재와 두 어린이의 행동으로 미루어 우리는 이 저택에 깃들인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지만 결말에 이르도록 무엇 하나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가정교사의 회고록 형식이라는 제한된 시점을 이용하여 작가는 많은 부분을 어둠 속에 남겨 둔 채 독자를 질식할 듯한 긴장감 속으로 몰아 넣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딕 소설 같은 외양을 하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심리적 스릴러가 되었다. 가난하고 감수성 풍부한 젊은 여성이 자신의 고용주에게 품는 애정에 가까운 경의, 그의 조카들인 자신의 학생들에게 쏟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애정, 그런 학생들을 위협하는 유령들, 그녀를 도와 주면서도 과거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가정부 등, 이 모든 등장 인물들을 가로지르는 섬세한 관계의 선들이 소설의 긴장감을 지탱해준다.

원제는 '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인데 '유령의 집'이라는 다소 평범하고 직설적인 우리말 제목을 붙여 놓았다. 그래야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아뭏든 유령 이야기를 다룬 점에서 헨리 제임스의 작품 치고는 특이하지만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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