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한길그레이트북스 53
르네 지라르 지음, 김치수.송의경 옮김 / 한길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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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떤 물건이 눈에 밟혀 그것을 사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리하여 벼르고 벼르다가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음에도 그것을 사고야 만다. 그러나 그것이 막상 내 소유가 되었을 때에는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니었을 때 내 눈에 보였던 휘황함은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생각한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이걸 원했던가?

지라르의 이 책은 문학사의 걸작들을 통하여 그 안에 드러나는 욕망의 구조를 파헤친다. 소설들을 읽은 독자라면 이해의 깊이를 넓힐 수 있겠지만 읽지 않았더라도 이해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 그만큼 저자의 논리는 명쾌하며...더우기 위에서 말 한 것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우리를 괴롭히는 욕망들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설명하는 이 책의 내용이 낯설진 않을 것 같다.

내 영혼이 원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 없이, 외부에서 주어진 것을 자신의 욕망이라고 여기는 데서 현대 사회 인간들의 비극이 시작된다. 욕망이 외부로부터 주어졌으므로 그 충족 또한 외부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 우리 사회의 '명품' 열풍을 보면서 이 텍스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가방은 가방 자체로서가 아니라 거기에 덧씌워진 이미지들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고 그 가방으로 얻는 만족감은 남들의 찬탄 어린 시선을 받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광고가 구사하는 전략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모자란 것이 없음에도 더 많이 원하게 되고, 언제나 남들이 가진 무언가를 원하는 갈증에 시달리게 된다.

여기 소개되는 책들이 최근에 발표된 것일수록 이러한 '존재론적 질환'을 더욱 심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은 현대가 어떠한 시대인지를 인식하게 한다. 문학 평론이지만 훌륭한 문학은 또한 현실의 날카로운 반영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현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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