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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1
토머스 해리스 지음, 이창식 옮김 / 창해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여름날의 더위를 잊기 위해 집어들었던 '양들의 침묵'이 그 이상의 무언가를 내게 주었던 데 비해, 이 책은 바캉스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편에서 그토록 잔인하면서도 매력적이고, 신비에 싸여 있었던 렉터 박사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어 미국에서 이탈리아로,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돌아다니며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지만, 이 활동적인 렉터 박사가 어쩐지 좀 우스워 보이는 것은 왜일까?
덫에 걸린 듯한 스탈링과 지나치게 활력 있어 보이는 렉터 사이에 작가는 파치가의 후손인 이탈리아 경찰과 메이슨 등의 인물들, 그리고 피렌체의 도서관과 기억의 궁전, 푸아그라와 송로버섯 등을 늘어 놓지만 그 모든 것들은 유기적으로 결합하기를 거부하고 예의 렉터의 피범벅 향연과 함께 뒤죽 박죽이 되어 버린다.
특히 이 소설을 실망스럽게 하는 절정은 결말. 마치 해피 엔딩을이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가득찬 듯한 이 결말은 나를 결정적으로 실소하게 만들었다.인간의 모든 어두움들을 그렇게 장황히 늘어 놓은 후에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니?
별 하나를 주려고 하다가 그래도 두 개를 준 것은, 머리를 비우고 그냥 읽으면 그런 대로 재미있다는 미덕을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이 책의 한계임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