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1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때때로 휴대전화가 무척 성가신 물건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공포심까지는 갖지 않았더랬다(전자파의 위험 어쩌고 하는 얘기는 많이 들었어도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첫 장, 이유 없는 폭력으로 가득찬 피비린내나는 문장들은 이 작은 문명의 이기에 대해서 공포심을 갖도록 만든다.

책 첫머리의 헌사를 통해 이것이 일종의 좀비물일 거라는 예상이 가능했다. 얼마 전에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를 읽기도 한 터이므로 어느 정도 어떤 분위기의 소설일지 감을 잡았던 것이다, 사실 나는 이른바 좀비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인간에 대해 큰 기대를 갖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어쨌든 나의 종족이 그렇게 이질적인 존재로 변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불쾌감을 일으키니까 말이다.

초반의 미친 듯한 폭력의 광시곡이 끝나고 나면, 그러나 소설은 비교적 평온히 진행된다. 아마도 이 새로운 인류가 좀비처럼 되살아난 시체도, 흡혈귀처럼 불사의 존재도 아닌 어쨌든 인간의 육체를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은 이들이 과연 어떠한 존재이고 어떻게 변해 가는가 하는 문제와 아들을 구원하기 위해 여행을 계속하는 클레이 일행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문명의 끝에 다다른 사람들의 삶을 그려낸다. 다소 뻔한 스토리일 수 있는 이 소설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반복되는 '에케 호모Ecce Homo'의 꿈 모티브이다. 신약의 예수 수난 스토리에서 따온 이 장면은 주인공 일행,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의 꿈 속에서 되풀이된다. 왜 하필 이 장면, 그리고 이어지는 처형이 중요한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예수의 죽음이 특히 서구인들을 기원전과 기원후의 인간들로 나눠 놓은 것처럼 이들의 처형이 펄스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사건이 될 것이라는 점 때문인 듯 하다. 그래서, 이들이 그 정해진 운명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피해 버렸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작가는 바이러스 때문에 새로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해 놓았는데, 그것은 바로 이 운명의 회피에 의해서 더 확고해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매듭지어지지 않고 끝난 마지막 장면에서, 아마 조니는 그의 옛 영혼을 되찾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소설은 킹의 작품에서 기대되는 재미 면에서는 만족할 만 하지만 그의 작품 중 뛰어난 수준이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소재 자체의 제약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물들은 다소 평면적이고 심리적 긴장감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내게 이 소설은 매드슨의 작품 외에도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을 연상시켰는데, 집단 공동 의식을 지닌 신인류의 출현이라는 점이 유사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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