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인이란 누구인가? "아니요"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거부란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는 반항의 시초부터
‘예‘라고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평생 명령을 받아온 한 노예가돌연 새로운 명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 ‘아니요‘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그것은 "이런 일이 너무 오래도록 계속되었소", "거기까지는 좋소,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되오", "이건 지나친 일이요" 또는
"당신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소"를 뜻한다. 요컨대 ‘아니요‘는 어떤 경계선의 존재를 긍정한다. 두 권리가 맞서 서로를 한정하는 이경계선 너머까지 상대편이 침범한다는 반항자의 느낌, ‘이건 좀 지나치다‘라는 반항자의 느낌 속에서 바로 한계의 관념이 발견된다. 반항운동은 참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침해에 대한 절대적 거부에 근거하는 동시에, 정당한 권리에 대한 막연한 확신,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반항자가 가지는 ‘...할 권리가 있다‘라는 느낌에 근거한다. 반항은 어떤식으로든, 어떤 곳에서든 스스로 옳다는 감정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반항하는 노예가 ‘아니요‘와 ‘예‘를 동시에 말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다. 그는 경계선을 인정하는 동시에, 경계선의 이편에 유지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긍정한다. 그는 자기 속에 ‘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유의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고집스레 증명하려 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자신을 핍박하는 명령에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범위 이상으로 핍박받지 않을 권리를 대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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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적 반항이란 인간이 자신의 조건과 창조 전체에 항거하는운동이다. 그것은 인간과 창조의 목적에 이의를 제기하는 까닭에 형이상학적이다. 노예는 자신의 신분에 주어진 조건에 항의한다. 형이상학적 반항자는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 항의한다. 반항하는 노예는 자신의 내면에 무엇인가가 있어서 주인이 자기를 대하는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형이상학적 반항자는 창조에 의해 기만당했다고 선언한다. 어느 경우든, 단지 순수하고 소박한 부정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두 경우 모두에서 우리는 하나의 가치판단을 발견하게 되는데, 반항자는 이 가치판단의 이름으로 자신의 조건에 동의하기를 거부한다.
주인에 항거하는 노예가 인간 존재로서의 주인을 부정하는 게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하자. 노예는 주인으로서의 그를 부정한다. 노예는 주인이 당연히 노예를 부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노예의 요구를 소홀히 여기고 노예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만큼주인은 실격된다. 만일 개인이 만인에 의해 인정되는 공통 가치를 누릴 수 없다면, 그때 개인은 다른 개인에게 불가해한 존재가 된다. 반항하는 자는 그 가치가 자기에게도 응당 인정되기를 요구한다. 이와같은 원칙 없이는 무질서와 범죄가 세계를 지배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항 운동은 그에게 명중성과 통일성의 요구로 나타난다. 가장 초보적인 반역일지라도, 그것은 역설적으로 질서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다. - P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