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너에게는 무리일 거야. 나는 몸을 다쳤지만, 너는 마음을 다쳤어. 너는 무엇보다 우선 네 마음을 회복해야 돼. 그러지 않으면 탈출하기 전에 우리 둘 다 절망적인 상태가 될 거야 나 혼자 생각할 테니까 너는 너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그게 가장 우선이야."
"그래. 난 혼란스러워." 나는 지면에 그려진 원으로 시선을떨구면서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어느 쪽으로 나가면 좋을지 정할 수도 없어. 자신이 과거에 어떤 인간이었는지도 그래, 자기를 잃은 마음이 과연 얼마나 힘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도 이렇듯 강한 힘과 가치 기준을 지닌 마을 안에서 말이야. 겨울이 온 후로 나는 내 마음에 대해 조금씩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어."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림자가 말했다.
‘너는 너 자신을 잃지 않았어. 다만 기억이 교묘하게 은폐되었을 뿐이지. 그래서 네가 혼란스러운 거야. 그러나 너는 절대 잘못되지 않았어. 가령 기억을 잃었어도,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법이야. 마음이란 건 그 자체가 행동 원리를 갖고 있어. 그게 즉 자기야 자신의 힘을 믿어. 그러지 않으면 너는 외부의힘에 이끌려 알 수 없는 장소로 끌려가게 될 거야." - P61
".......그래서 나는 생각했어. 완벽한 암호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고 말이야. 바로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스크램블하는 것. 다시 말해서 완벽한 블랙박스를 통해 정보를 스크램블하고, 그걸 처리해서 다시 똑같은 블랙박스를 통해 역스크램블을 하는 거야. 그리고 그 블랙박스의 내용과 원리를 본인조차 모르게 하는 것.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게 한다는 말이에요. 본인도 모르는데, 타인이 힘으로그 정보를 빼낼 수는 없지. 어때요. 완벽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 블랙박스가 인간의 심층 심리라는 말이죠."
"그래요. 그래. 좀 더 설명을 하자면, 이런 것이야 인간 한명 한 명은 각자의 원리에 입각해서 행동하지. 누구 하나 똑같은 인간은 없어요. 요컨대 아이덴티티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군. 아이덴티티란 무엇인가? 한 인간이 체험한 기억의 집적에 의해 형성된 사고 시스템의 독자성이라고 할 수 있지. 더간단하게 마음이라고 해도 좋아요. 인간의 마음은 저마다 다달라요.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사고 시스템을 거의 파악하고 있지 않아. 나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우리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 또는 파악하고 있다고 추정되는 부분은 전체의 15분의 1에서 20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아요. 그래서야 빙산의 일각이라고도 할 수 없지. ......." - P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