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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는 아버지가 누구를 증오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증오의 올가미는 우리를 증오의 대상에 옭아 맨다.
전쟁의 외설스러움이 바로 그렇다. 함께 쏟은 피의 친밀함, 서로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보면서 상대의 몸을 꿰뚫는 두 병정의 외설적인 친밀함.
(중략)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좀 전에 그녀를 사로잡은 증오로부터 그녀를 해방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이마를 치던 그 사내의 독기 어린 영상이 차츰 그녀의 뇌리에서 사라져 갔으며, 대신 이런 문장이 불쑥 떠올랐다.
나는 그들을 증오할 수 없다. 그들과 나를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공통점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