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높은 벽에 둘러싸여 있어서 들어가기가 무척 어려워." 너는 말한다. "나가기는 더 어렵고."
"어떻게 하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냥 원하면 돼.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그사이 많은것을 버려야 할지도 몰라. 너에게 소중한 것을. 그래도 포기하지마.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도시가 사라질 일은 없으니까." - P15
"오래된 꿈이란, 이 도시가 성립하기 위해 벽 바깥으로 추방당한 본체가 남겨놓은 마음의 잔향 같은 것 아닐까요. 본체를추방하더라도 송두리째 모조리 들어낼 순 없고, 아무래도 뒤에 남는 게 있어요. 그 잔재들을 모아 오래된 꿈이라는 특별한 용기에 단단히 가둔 겁니다."
"마음의 잔향?"
"여기서는 아직 어릴 때 본체와 그림자를 떼어내죠. 그리고 본체는 불필요한 것, 해로운 것으로 치부당해 벽 바깥으로 추방돼요. 그림자들이 안락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지만 설령 본체를 쫓아내도 그 영향이 말끔히 지워지진 않아요. 미처 제거하지 못한 마음의 작은 씨앗 같은 게 뒤에 남고,그것이 그림자의 내부에서 은밀히 성장해가죠. 도시는 그것을재빨리 찾아내서 긁어낸 뒤 전용 용기에 가둬버리는 겁니다."
"마음의 씨앗?"
"그래요. 사람이 품은 갖가지 종류의 감정이죠. 슬픔, 망설임, 질투, 두려움, 고뇌, 절망, 의심, 미움, 곤혹, 오뇌, 회의, 자기연민・・・・・・ 그리고 꿈, 사랑. 이 도시에서 그런 감정은 무용한것. 오히려 해로운 것이죠. 이른바 역병의 씨앗 같은 겁니다."
"역병의 씨앗" 나는 그림자의 말을 되풀이했다.
"네. 그러니 남김없이 긁어내 밀폐용기에 담아서 도서관 깊숙이 넣어두는 거예요. 그리고 일반 주민의 접근을 금지하죠."
"그럼 내 역할은?"
"아마 그 영혼을 -혹은 마음의 잔향을-가라앉히고 소멸시키는 일이겠죠. 그림자들이 할 수 없는 작업이에요. 공감이란 진짜 감정을 가진 진짜 인간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 P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