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자기 상상에 심취한 그들이 부러웠다. 그때 나는 다 알면서도 일부러 주변 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륙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부다페스트의 부유한 십대로 예쁨받는 즐거움에 젖어 전쟁의 숙명 따위를 걱정할 시간이 없었다. 참 한심한 생각이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안에서 큰 전투가 벌어진 건 아니었으니까. 헝가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곡창지대였기에 전시기근으로 밀 가격이 치솟으면서 부자는 더욱더 부유해졌다. 그래서 우리는 다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굴었다. 끔찍해보이리란 것을 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인류에 관한 단순한 진실을 아주 일찍이 깨쳤다.

문 앞에서 악마가 문을 두드리는 와중에도 우리 인간은 춤출 수 있다는 것. 
내가 그리고 우리 대다수가 그랬다. 그런데 그게 진짜 우리 탓이려나? 
- P82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무려 2천 페이지에 걸쳐 서술된 빼곡한기호들과 난해한 논리 체계로 일관되고 완전한 수학적 기초를창조하고자 했다. 

반면 폰 노이만의 박사논문은 한 페이지에 공리를 쓰고도 남을 만큼 간결했다. 훗날 그의 시도 역시 성공하지 못한다는 게 밝혀지지만, 그의 배짱과 간결함은 사람들 눈에띄었고, 그는 얼마 안 가 동료 학자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폰노이만의 박사 논문은 장차 그가 연구에 일관되게 적용 스타일을 일찌감치 보여주었다.

주제에 와락 덤벼들어 가장 기본적인 공리만 남도록 발가벗긴 다음, 자신이 분석하는 것이 무엇이든 순수 논리의 문제로 바꿔버리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볼 줄 아는 초현실적인 능력, 거꾸로 말하자면 오직 기본만을 보는 특유의 근시안은 그가 가진 천재성의 비결인 동시에 흡사 어린애 같은 도덕적 무지의 이유였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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