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절 빈센트는 "모델이 없어서 나 자신이라도 그리려고꽤 괜찮은 거울을 하나 샀지", "다른 모델을 구할 수가 없어서 자화상을 두 점 그리고 있다"라고 테오에게 넋두리를 한 적이 있다.

이처럼 그는 달리 모델도 없고 모델을 구할 돈도 없어서 자신을그린다고 변명했지만, 단순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상파의 색채를 받아들이던 낯선 파리 생활에서 고달픈 이방인 작가로서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집요한 회의에 직면해야만 했던 상황도 자화상에 몰입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빈센트는 파리 시절과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말기에 자화상을 가장 많이 그렸다.

화가들은 고단하고 암울한 시기에 가장 많은 자화상을 그린다. 빈센트 역시 약 2년간의 파리 시절에 스물일곱 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그의 자화상은 단순한 자기 묘사가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탐색과 성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고뇌와 연민, 고립과 소외, 충동과 공격성, 외로움과 고독 등을 극복하고 살아남고자 한 존재의 필사적인 투쟁의 역사를 보여 준다. - P78

보통 사람들의 얼굴에 신성이 깃들어 있어

빈센트가 사로잡힌 것은 초상화였다. 그는 "인간이야말로 모든것의 뿌리다. 인간의 얼굴이야말로 내 안에 있는 최고의 것, 가장 진지한 것의 표출이다" 라고 말했다.
 평생을 모델을 찾는 데 열중했던 그에게 초상화란 유일하게 사람을 소유하는 경험을 해 주는장르였다. 그는 모델을 선정해 자세를 취하게 하는 등 그 자신이주도적인 위치가 된다는 것에 매료되었다. 그는 개성 있는 모델을구해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일생의 과제로 삼게 되었다.
......

당시 인상주의는 인간 탐구를 포기하다시피 했고, 인물도 자연을 그릴 때처럼 순간적으로만 포착할 뿐이다. 대부분의 초상화는 주문이나 강요에 의해 어떤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공식적이고 영웅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그려졌다.
하지만 빈센트는 주묺하가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생각과 영혼과 열정이 담긴 모습을 그리고 싶어 했다. - P1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