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카트 멘쉬크 그림 / 문학사상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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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후, 나는 도서관에 가서 잠에 대한 책을 읽어보았다. 잠에 관한 책은 그다지 많지 않고, 별로 대단한 내용도 없었다. 결국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잠이란 휴식이다. 그것뿐이다. 차의 엔진을 꺼버리는 것과 똑같다. 줄곧 휴식 없이 엔진을 작동하면 얼마 못가 망가져버린다. 엔진의 운동은 필연적으로 열을 발생하고 그렇게 고인 열은 기계 자체를 피폐하게 한다. 
그래서 방열을 위해 반드시 쉬게 해주어야 한다. 엔진을 끄고 다운시킨다. 그것이 곧 수면이다. 

인간의 경우, 그것은 육체의 휴식이면서 동시에 정신의 휴식이기도 하다. 몸을 눕히고 근육을 쉬면서 동시에 눈을 감고 사고를 중단한다. 그랬는데도 남아 있는 사고는 꿈이라는 형태로 자연 방전한다.

어떤 책에 재미있는 얘기가 있었다. 인간은 사고에 있어서도 육체의 행동에 있어서도 일정한 개인적 경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그 저자는 말했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행동이나 사고의 패턴을 만들어나가는 존재이고, 한번 만들어진 그런 경향은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바뀌지 않는다. 즉 인간은 그러한 경향의 감옥에 갇힌 채 살아가는 셈이다.

그리고 잠이야말로 그렇게 한쪽으로 쏠린 경향을 - 구두 뒤축이 한쪽만 닳는 듯한 일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 중화해주는 것이다.
인간은 잠 속에서, 한쪽으로 쏠린 채 사용되던 근육을 자연스럽게 풁어주고, 한쪽으로 솔리뉴채 사용되면 사고 회로를 진정시키고 또한 방전하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쿨다운된다.

잠은 인간이라는 시스템에 숙명적으로 프로그램화된 행위이며 누구도 그것을 패스할 수는 없다. 잠을 잃어버리면 인간은 존재 그 자체의 기반을 잃어버리게 된다. 저자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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