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는 카프카의 명제에 『숨그네』보다더 부합하는 작품이 있을까"라고 안드레아 쾰러는 말했다. 누군가가프리쿨리치의 이마에 도끼를 꽂았듯, 작가는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에 도끼를 내리친다. 다행히 『숨그네』는 독자의 공감을 통해 그 얼음이 깨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분노 속에서도 희망을 갖게한다.

- 해설 중 - P343

많은 사람이 사라졌가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 눈앞에서 쓰러진 경우가 아니면 죽은 사람으로 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 묻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보다 빨리 사라져간 사람들에 대한 시각적인 기억이 많을수록 두려움도 커졌다. 두려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다가 무심의 경지에 이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죽은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어떻게 그리 민첩하게 행동할 수 있겠는가. 죽은 사람을 보면 팔다리가 굳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기 전에 서둘러옷을 벗겨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그가 아껴둔 빵을 베개에서 꺼내야 한다. 그렇게 말끔히 정리하는 것이 우리가 애도하는 방식이다. 막사에 들것이 도착하면 수용소 간부들이 시체만 가져갈 수 있게 다른 것은 없어야 한다.


죽은 사람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전리품만 보인다.
시체를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악의적인 행동이 아니다. 입장이바뀐다면 죽은 사람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수용소는 실용적인 세계다. 수치심과 두려움은 사치다. 흔들림 없이, 어설픈 만족감으로 시체를 처리한다. 남의불행을 기뻐하는 감정과는 다르다. 죽은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이 줄어들수록 삶에 더 악착같이 매달리게 되는 듯하다. 그만큼 착각은 더심해진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수용소로 간 거라고 혼잣말을중얼거린다. 사실은 효력이 없다. 사람들은 그 반대를 믿는다. 빵 법정처럼 시체 처리도 현재만을 안다. 하지만 난폭하지 않다. 공정하고순하게 진행된다. - P1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