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01˝ 역사에는 그대로 어둠 속에 묻어두는 게 좋은 일도 무척 많다네. 올바른 지식이 사람들 윤택하게 해준다는 법은 없네. 객관이 주관을 능가한다는 법도 없어. 사실 망상을 지워버린다는 법도 없고 말일세.˝p.502˝ 그림이 말하게 놔두면 되지 않나.˝ 기사단장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그 그림이 뭔가 말하고 싶어한다면, 그낭 말하게 두면 돼. 은유는 은유의 상태로, 암호는 암호의 상태로, 소쿠리는 소쿠리의 상태로 놔두면 된다고. 그런다고 뭐 블편할 게 있나?˝(중략)˝ 프란츠 카프카는 경사가 급한 비탈길 중간에 서 있는 집을 바라보기도 좋아했어. 길바닥에 주저앉아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그 집을 바라봤다네. 물리지도 않고, 한 번씩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똑바로 세우기도 하면서. 좀 별난 사람이었지. 그런 이야기를 알고 있었나?˝(중략)˝ 그래서. 그런 걸 알게 됐다고 그가 남긴 작품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깊어지는가. 그 말일세.˝p.503˝ 진실은 곧 표상이고, 표상은 곧 진실이지. 그러니까 눈앞의 표상을 통째로 꿀꺽 삼켜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이야.....사람이 그외의 방법을 써서 이해의 길을 나아가려는 건 흡사 물에 소쿠리를 띄우려는 짓이나 마찬가지야. (중략)˝ 구멍 숭숭 뚫린 물건을 물에 띄우는건 누구에게나 의미 없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