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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뜨거운 것들
최영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p. 96
서울의 울란바토르
어떤 신도
모시지 않았다
어떤 인간도
섬기지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진 새처럼
나 홀로 집을 짓고 허무는데 능숙한
나는 유목민.
농경 사회에서 사느라 고생 좀 했지
짝이 맞는 옷장을 사지 않고
반듯한 책상도 없이
에어컨도 김치냉장고도 없이
차도 없이 살았다 그냥.
여기는 대한민국.
그가 들어가는 시멘트 벽의 크기로
그가 굴리는 바퀴의 이름으로 평가받는 나라.
정착해야, 소유하고 축적하고
머물러야, 사랑하고 인정받는데
누구 밑에 들어가지도 않고
누구 위에 올라타지도 않고
혼자 사느라 고생 좀 했지
내가 네 집으로 들어갈까?
나의 누추한 천막으로 네가 올래?
나를 접으면,
아주 가벼워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