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한 결점
안느-가엘 발프 지음, 크실 그림, 이성엽 옮김 / 파랑새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여전히 결점 투성이다. 20대 까지는 외모에 대한 결점이 더 크다 생각했고, 30대에 접어들어서는 내면의 결점이 더 많았다. 단단하지 못한 내면, 쉽게 무너지는 자존감, 자꾸 초라해지는 내 자신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게 싫었다. 출산을 하고 난 뒤에는 더 심했다. 육아에 지쳐 겉과 속을 꾸미고 들여다보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러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내 시간을 조금씩 갖게 되면서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오랫동안 방치해뒀던 나를 찾은 기분이었고, 더 이상 주눅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결점은 여러 종류가 있단다. 잘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결점도 있고,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하거나 잘 읽지 못하게 하는 결점도 있지. 그런데 말이야. 이런 결점들이 큰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전혀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어.”

태어날 때부터 작은 결점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커감에 따라 점점 커지는 결점이 자신을 방해해서 애를 먹는다. 여러 가지 방법을 찾다 결국 의사 선생님까지 찾아갔다. 뾰족한 수가 없던 어느 날 아이는 특별한 의사 선생님을 만난다. 역시나 자신처럼 결점이 있는 선생님이었고, 아이에게 ‘전혀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작은 결점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아이에게는 꼬불꼬불한 실이 항상 몸에 머물렀다. 가슴에 있던 결점이 커가면서 얼굴에 드러나자 단순하게도 점 같은 건 줄 알았다. 그래서 결점이 아이의 발목을 잡고,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게 귀까지 막을 때에도 구체적인 결점에 대한 정체만 찾으려고 했다. 그러다 혼자 있을 때는 결점이 얌전해진다는 글과 그림을 보고 그것이 눈으로 드러나는 어떤 형태가 아님을, 내면에서 생겨나는 콤플렉스 같은 것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나 자신이 결점인가?’라는 의문까지 갖게 되는 아이는 결점을 없애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만 특별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야 변화되기 시작한다. 여전히 결점은 아이를 방해하고 괴롭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자, 결점들이 작아졌다.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닌 스스로 강해졌다 믿는 아이를 보며 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정말 운이 좋은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작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신경 쓰지 않게 되자 바로 변화가 시작됐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이는 다른 사람들도 ‘내 결점이 아닌 나를 본’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고 한껏 행복해졌다.

형태로 존재하지 않은 채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표현되고, 형형색색으로 묘사된 결점만 보고 있어도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내 안에 존재하면서 때때로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했던 결점들이 어쩌면 정말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너무 움츠리진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요즘의 나를 곰곰 되짚어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치중한 결점들이 많이 드러났음을 알게 되었다. 외부의 영향에 쉽게 무너지는 자존감을 보며 내 스스로 좀 더 단단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달라고 하면서 정작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외부에서만 찾으려고 했으니 충족될 리가 없었다. 따뜻한 그림책 한 권으로 오늘 하루가 훨씬 풍성해진 기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