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
파트릭 모디아노 글, 도미니크 제르퓌스 그림,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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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아이 책꽂이 정리를 하다 이 책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저자가 이런 그림책도 출간했었나?’며 바로 꺼내서 읽었는데 전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만난 기분이었다. 묘사가 주를 이루고 줄거리는 두루뭉술한 그의 소설만 읽다 개가 등장하는 그림책을 읽고 나니 같은 저자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 저자 이름을 무시하고 읽었더라면 더더욱 연관성을 찾기가 힘들었으리라. 작품의 완성도가 아닌 작품의 색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책은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야기였다.


  제목처럼 이 책의 주인공은 개 ‘슈라’이며, 사람처럼 책도 읽고 학교에 다니고 나름대로의 취향도 있다. 굉장히 현대적인 집에 살면서 마치 사람처럼 생활하고 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주인의 서재에서 책 한 권을 발견하고 읽게 된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이 배경인 책인데 슈라는 그 이야기에 빠져 관련 영화까지 보게 된다. 그렇게 그 책의 감흥에 흠뻑 젖어 있을 때 주인이 슈라를 기숙사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기숙사로 가기 싫어하던 슈라는 책의 저자인 남작부인에게 편지를 써 사정을 이야기하고 남작부인이 보낸 자동차를 타고 그의 저택으로 간다.


  남작부인은 슈라를 반갑게 맞이하고 그 전 주인에게도 편지를 써주겠다며 그를 비서로 채용한다. 그리곤 슈라의 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느긋한 생활을 하게 된다. 남작 부인의 친구들과 식사를 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파티에서 춤도 추고, 취미로 수상스키도 즐긴다. 그리곤 영원히 바캉스를 즐기며 살 것이며, ‘좋은 집에서 개가 되어 사는 것보다 더 나은 팔자는 세상에 없’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좀 황당해서 당황스러웠다. 저자의 이름 앞에 붙은 노벨상 수상작가라는 타이틀 때문에 더 신경 쓰며 읽어서인지 슈라가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 년 쯤 지나 다시 읽어 보니 저자 이름은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슈라의 이야기와 슈라의 일상을 그린 그림에 더 관심을 갖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 그림을 보는 듯한 화풍에 슈라가 우스꽝스럽게 등장해서 이 이야기가 더욱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슈라가 사람과 같이 행동하고 사람들은 그를 묵과하거나 받아들이는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어색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좀 더 특별한 개 슈라의 이야기라고 치부하자니 슈라의 삶이 부럽기까지 했다. 스스로도 말했듯이 좋은 집 개로 살아가는 것 치고는 그의 취미 생활과 취향들이 너무 느긋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인간이나 동물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일까? 어쨌거나 그의 느긋함이 한껏 부러워지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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