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단도 문학동네 시인선 53
정철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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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개 같은 신념』을 무엇에 홀린 듯 읽고 난 뒤 시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시들이 묶여 나온 이 시집을 마주하면서 뭔지 모를 기대와 평안함이 있었다. 전작에서 보여준 분위기를 기대하는 것은 독자의 욕심이지만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한 것은 분은 분명한 듯하다.


  일기를 보는 듯했다. 시인의 일상을 따라 내면을 낱낱이 들여다본다고나 해야 할까? 평범한 아빠의 모습도 있고 중년 남자의 모습도 있으며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도 있다. 그 모든 게 어우러져 시인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자신임을 부인할 수 없는 수많은 형태의 나. 그런 나의 모습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 흐름에 따라가다 보니 평소처럼 좋은 구절은 없는지 기웃거리지 않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시구는 없다. 책을 읽을 때 좋은 구절을 찾으려 하고 거기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메시지를 끼워 넣었던 적도 있었다. 마음에 평안을 주는 시들만 적혀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한 사람의 삶을, 그 삶의 굽이굽이를 넘나들다 온 기분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의미부여도 어설픈 메시지도 넣지 않아서 편안하게 읽었다. 이런 읽기에 잔여물이 남지 않는다고 해서 한 권의 시집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도 아니므로, 오히려 이런 읽기가 때론 마음을 편안하고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경험한 셈이다.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시인은 시 속에 그런 경험을 자연스레 녹여냈다. 오히려 그런 차분함이 이런 삶을 살아온 본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세계의 사람 같다가도 경이롭게 바라보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나였다면 진작 나가 떨어졌을 절망과 고독 속에서 저자는 묵묵히 시를 통해 기록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가 아닌 이러한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 말이다. 눅진하게 들러붙는 그의 시, 그의 삶이 또 다른 목소리로 들린다면 여전히 지켜보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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