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자
정찬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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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전생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자못 흥미로웠지만 종교적인 배경이 깊어질수록 소설임에도 내가 가진 종교에 대한 되새김질을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이스라엘에서 서울로 향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펼쳐 지는듯 싶더니 아랍인 청년 이브라임의 녹음기를 통해 듣게 된 이야기는 더 복잡하고 미묘해진다.


  낳아 준 어머니와 길러준 어머니가 있는 주인공. 내림굿을 받은 어머니가 있는 주인공이라서 그런지 이브라임의 이야기 속에서 펼쳐진 환생이란 주제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또 다른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소설을 읽어가다, 점점 깊어지는 이브라임의 환생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머리가 아득해지고 혼란스러워졌다. 십자군 시대에도 살았고 이집트의 기록관이기도 했던 이브라임은 다른 두 시대를 모두 살았던 인물이었다. 그 가운데는 예수가 있었고 예수의 아이를 낳아 기른 여인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평범한 남자로 살아가고자했던 예수를 이야기하고 있다 보니 ‘소설은 소설로 받아들여야지.’ 하면서도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내 믿음에 대한 불확신이 아닌 이런 내용을 과연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해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믿고 있는 신에 대해 갖지 않아도 될 상상력이 발휘되고 있어 소설로 치부해버리기엔 내내 마음에 걸리고 있었단 얘기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걸린다고 해서 이 소설을 편견으로 가둘 수 없었다. 불편한 마음이 치우치지 않게 소설을 읽어가고 있었지만 혼란스러운 시간의 배열이 더 몽롱하게 했던 것 같다. 예수의 삶 이외에도 십자군 전쟁의 잔인함과 두개의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이브라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또한 현실로 돌아와서 ‘나’와 어머니와의 관계, 그 안에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삶의 연결 고리들이 소설의 제목과 꼭 맞아 독자를 유랑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떤 식의 유랑이든 결국엔 누구나 유랑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오랜 시간의 틈을 두고 삶을 살아온 이브라임이나,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와 독자인 나도 결국엔 다양한 의미로 유랑을 하고 있는 셈이 아닐까? 삶을 살아가면서 종종 느끼고 있는 고독과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과 존재여부에 대한 궁금증을 저자는 이토록 잔인하면서도 불편하게 소설로 써 내려간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 길고 긴 이야기의 끝이 용서와 그럼에도 사랑이 있어 살아갈 수 있다는 조금은 진부한 뜻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할 여지는 광범위했지만 이 소설을 통해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종종 나를 넘어뜨릴 정도로 관통하는 존재에 대한 고독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고 하면 너무 비약적일까? 단호하게 ‘이러이러했다.’고 말할 수 없는 많은 여지를 남기는 소설이어서 여전히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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