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잇태리
박찬일 지음 / 난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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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년차가 되고 나니 이제야 집을 정리할 맛도 나고, 시간을 들여서 음식을 해 볼 마음도 생긴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엄청나게 집안일도 잘하고 요리도 좀 할 줄 아는 주부로 보일지 모르나, 겨우 아줌마의 티를 내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간 집 정리와 청소는 남편에게(임신과 육아를 핑계로) 맡겼고, 요리는 늘 주변에서 해 주는 것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콩나물국을 맹물로 끓이고 소금을 때려 부었는데도 아무 맛도 안 난다는 남편의 국그릇을 뺏을 정도로 요리에 서툴렀고 재능도 없었다. 그런 내가 뫼비우스 띠 같은 메뉴일지라도 김치찌개, 된장찌개, 콩나물 국(이젠 육수로 끓인다.), 어묵 국 들을 끓이면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맛이 날까 고민하고 있다. 그래봤자 끓일 때마다 맛이 다르지만 서툰 주부의 일과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이런 내가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다는 게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썰이 길어져 버렸다.


  출간 당시에 조금 읽었었고, 저자와의 만남에도 참석해 얘기를 들었음에도 당시에는 나에게 뭔가 확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나 같은 구경꾼도 간단한 파스타를 만들어 먹을 정도로 쿡방이 인기였고(개인적인 생각으로 이젠 내리막인 것 같다.), 늘 토마토 스파게티만 먹던 내가 알리오 올리오에 유명 요리사의 레시피를 따라서 다르게 만들어 먹으면서 이탈리아란 나라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읽다 만 책일지라도 지나칠 수가 없었다. 무슨 내용인지 훑기나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가 이틀 만에 읽어 버렸다. 먼저는 꾸며내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표현과 생각이 드러나서 신선했고, 태연한 능청스러움과 B급 유머로 웃음을 유발시켜 주어서 좋았다. 거기다 이탈리아를 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아니면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우고 살아봤기에 좀 안다는 잘난척인지 헷갈릴 정도로 태연자약하다. 아마 몇 년 전의 나라면 인상을 찡그리면서 책을 덮거나 진정한 매력은 알지 못한 채 억지로 완독을 했을 것이다. 때로는 뭔가 느낌이 오지 않으면(혹은 게으름 때문에) 책을 묵혀두는 나의 습관이 적당한 때를 찾게 해준 계기가 된 것 같아서 조금은 고마운 마음도 생겼다.


  이 책은 친절하지 않다. 그간 만나 온 여행서나 에세이를 떠올려 보아도 이렇게 까칠하게 다른 나라의 경험을 이야기한 책은 거의 없었다. 좀 거칠게, 때론 있는 그대로의 짜증을 드러내며 이탈리아를 말하고 사람들과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으로 이탈리아를 알아 가면 안 될 것 같은 위험성도 보이지만 오히려 환상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이탈리아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책이 아닌가 싶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요리를 배워서 현지에서 그 경험을 책으로 썼는데, 칭찬 일색이거나 두루뭉술하게 묘사만 하고 있다면 별로일 것 같다. 차라리 저자처럼 적당히 욕도 해주고(어쩜 넘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뻔한 여행경로보다 직접 경험하고 발로 뛴 감각으로 멋진 곳을 소개해 주는 책을 좋아할 것 같다.


  책을 읽고 나서 책의 앞쪽에 실린 이탈리아 지도를 다시 봤다. 늘 가보고 싶었던 유명 도시보다 저자가 소개해준 조금은 낯선 도시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리곤 이탈리아를 가게 된다면 사람이 많은 곳보다 저런 곳을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맛있는 현지 음식을 먹고 풍경에 감탄하며 현실로 돌아와서는 여행의 불편함도 고스란히 느껴보고 싶다. 현재는 그럴 가망성이 희박하지만 집에서도 간단한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있으니 그 가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까지 다른 종류의 파스타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너무 많은 재료가 들어가는 한식에 좌절할 때, 알려준 대로 재료를 넣고 섞었는데도 양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메인 음식을 망쳤을 때 후다닥 할 수 있는 파스타가 나를 숨 쉬게 해준다. 대신 큰 설거지가 많이 나오게 하는 단점이 있지만. 오랜만에 알리오 올리오 한 번 만들어 먹어봐? 아, 지난주 금요일에 집에 손님이 와서 만들었었지! 그럼 다음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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