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 이야기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낯선 작가, 낯선 작품과 마주하는 일은 때론 모험에 가깝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새로운 책과 마주하는 일은 약간의 망설임도 있고 기대와 설렘을 증폭시키며 독서의 즐거움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마주한 책이 마음에 들면 책 읽는 즐거움이 한 단계 올라가고 반대의 경우일지라도 기운은 조금 빠져도 다음 기회를 노리며 책에 대한 탐닉을 멈추지 않게 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독서의 즐거움이 한껏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작가와 그런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만 마주하다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하고, 신선한 재미를 안겨주는 작가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분됐다. 마치 이런 작품을 만나기 위해 뜨뜻미지근했던 시간을 보상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조금씩 쌓아가면서 결국엔 큰 그림을 풍부하게 묘사하는 장편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단편의 완성도가 높을 때 그 작가를 좋아하는 속도는 좀 더 빨라진다. 장편과 단편을 비교하는 것 자체를 차치하고라도 짧은 이야기를 완성도 있게 그리는 것에 개인적으로 더 높은 점수를 주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벨기에 출신 작가의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신선함과 독특함, 그리고 문장에 녹아있는 능수능란함에 놀랐다. 뻔히 소설임을 알고 있는데도 능청스럽게 진짜인 것처럼 말하는 능력에 흠뻑 빠져 들어서 재밌다를 연발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온 몸이 오렌지 껍질로 덮인 여인과의 하룻밤을 다룬 이야기며 자신에게 사랑고백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애타게 찾고,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은 단편까지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상상력과 독특함이 존재하는지 놀라웠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이 책의 제목인 <육식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거대한 파리지옥에 빠진 식물학자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식물에 대한 광기와 집착이 그의 최후를 예견했으면서도 감질맛 나는 전개가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와 함께 일했었던 조수의 입으로 들려온 이야기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독특한 재미로 채워진 이 단편집의 마지막을 완벽하게 채워준 내용이었던 것 같다.

 

  기이함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둡지 않고 황당하지 않고 그럴싸하게 글쓰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책을 읽다보면 금세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보란듯이 그렇게 글을 쓰고 있다. 단편이라 자칫 산만할 수도 있는데 굉장히 흡인력이 있고 재미까지 있다. 이런 상상력은 어떻게 나오는지, 이런 문장력과 이야기의 힘과 실험적인 내용을 어떻게 생각해내는지 원초적인 궁금증이 일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환상적인 이야기에 가깝다는 사실을 앎에도 마치 진짜처럼 느껴져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책이 좋아 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저자의 다른 작품이 있는지 검색해 보니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란 책이 출간되어 있다. 마침 내 책장에 꽂혀 있어서 미리 꺼내놓고 대기했을 정도였다. 이제 이 책을 읽어봐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