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안전성
A.M. 홈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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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머릿속에서 순간적으로 나쁜 생각이 떠오르는 일이 잦다. 일어난 일에 대한 생각이 아닌 지금 이 순간 갑자기 이러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면과 같은 가정 하에 필름처럼 결과가 끔찍하게 지나가는 것이다. 왜 이런 생각들이 자주 드러나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때마다 고개를 흔들어서 생각을 지워버리거나 짧게 기도를 한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누군가에게 섣불리 말할 수도 없고, 말하고 싶지 않은 요즘의 이런 생각들을 애써 떨쳐내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오래전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막 나쁜 짓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그 나쁜 짓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살아볼까 하는 그런 거였다. 소심한 나는 생각에 그치고 말았지만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순간적으로 품었던 그런 생각을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나쁜 상상과 전혀 연관성은 없어 보이지만 과장해서 말하면 내면의 깊이 숨겨져 있는 또 다른 나의 본능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본능을 꾹꾹 누르면서 표면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저자는 버젓이 드러낸 데에서 오는 충격이 있었다. 굳이 끄집어내어서 들려줄 정도로 건강한 이야기들이 아닌데 왜 저자는 그런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하고 있는 것일까?


  꼭 기억에서 지워내고 싶은 이야기들의 나열 같았다. 이야기의 흐름도 갑자기 툭툭 튀어 나와서 안정적이지 못한 매끄러움과 자주 마주하다 보니 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의 행동은 더 가관이었다. 식물인간 아들에게 끔찍한 행동을 하는 엄마,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몸을 마당에서 드러내고 있는 소녀, 바비 인형을 인간화 시키는 소년하며, 납치극을 다룬 이야기도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모처럼 결근을 해야 하는 변호사가 출근을 꼭 해야겠다는 이야기는 소소할 지경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드러날 때마다 불편했다. 고삐가 풀려버린 본능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것 같았고, 종종 선을 넘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종종 나의 내면에도 이렇게 고삐가 풀려버리고 싶었던 상황이라던가 그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기에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욕망이 존재한다고 해도 범죄와 연결되는 내용들은 공감하기 힘들었고 어찌되었든 여전히 감추고 싶었다. 무조건 감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잘못 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욕망의 분출이라면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이기에 어쩌면 내가 분출하지 못한 어긋난 욕망에 대한 해소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일상이 이렇게 어긋나는 건 원치 않는다. 그 욕망의 분출이 다른 방법으로도 드러날 수 있다고 믿기에 소설은 소설로 간주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가 너무 소설을 소설로 보지 못한 걸까 고민할 때,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사실 생각도 함부로 하면 안 되잖아요? 좀 무서운 생각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 경험 다 있잖아요? 이렇듯 보통 사람들은 생각도 범위를 제안하면서 살고 있는데, 작가들은 보통 사람들을 대신해서 상상하고, 이상한 세계를 탐험하죠. 물론 여기서의 이상한 세계는 물리적인 세계가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예요.(말하다, 112쪽)’ 이 문장을 통해서 어쩌면 작가는 보통 사람인 나를 대신해서 이상한 세계를 탐험하고 보여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그제야 나를 너무 깊게 개입시키지 않고 소설을 소설로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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