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도
윤영수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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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명작을 읽겠다고 다짐하면서 해외소설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국내문학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해외소설이니 철저히 국내문학을 외면한다면 모를까, 늘 마음 한켠에 국내문학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곤 한다. 유명한 몇몇 작품은 틈틈이 읽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해외소설에 쏟는 애정만큼은 아니다 보니 늘 애가심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러다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국내문학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읽게 되었는데, 내가 모르는 작품과 저자가 엄청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의 무지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출판사에 일하는 시기에 그나마 국내문학을 접하고 작가를 알아가고 운 좋게 만나기도 하고 강연을 들으면서, 내가 더 관심 갖는 해외소설 만큼이나 국내에도 다양한 작품과 작가가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책을 읽을 때 전혀 기대하지 않은 작품에서 의외로 괜찮은 모습을 발견하면 책을 읽는 기쁨이 배가 됨을 느낀다. 특히나 내가 잘 알지 못한 작가였다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제라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윤영수 작가가 내게 그렇게 다가왔고 표지도 제목도 독특한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관심을 갖고 싶은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단편의 내용은 밝고 희망을 주며 마음속에 희열을 주는 것보다, 속 터지게 만들고 소외된 이웃의 이야기를 만난 듯해서 답답함이 이는 내용이 많았지만 그래도 문체라든지 소재라든지 오랜만의 국내문학에서 괜찮은 작품을 만난 것 같았다.

  6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속 터졌던 작품은「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이었다. 제목 그대로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아 애먼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행패를 부리는데도 집주인은 천하태평에 그 사람에게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고 휘둘리기만 한다. 답답할 정도로 착한 주인공의 등장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머니 고맙습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을 보는 것은 인내를 요했다. 나 또한 타인에게 악다구니를 쓰며 따지기보다 혼잣말로 불만을 드러내는 편이라 격한 성격은 아닌데도 이 단편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불평을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속 터짐을 느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착한 인물을 등장시킨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어딘가에 이런 인물이 존재하고 있을 것 같지만 그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점점 악해져가는 이 세상에 대한 반푼이 같은 저항은 아니었을까?

  「도시철도 999」란 작품을 읽으면서 짧은 나의 대도시 생활 가운데 늘 우울하고 무미건조하게 남아 있던 지하철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하철은 비교적 시간이 정확하고 목적지에 잘 닿을 수 있다는 편리함이 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해서는 너무 무관심일 때가 많아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노선만 안다면 버스를 이용하고 싶지만 늘 여의치 않아서 지하철을 이용하곤 했는데, 타인에게 전혀 관심 없는 무심한 표정과 행동을 일삼는 반대편의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 그리고 어느새 나도 그들과 같은 표정과 행동을 닮아가는 모습에서 지난함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이 단편을 읽는 내내 쓴물처럼 지하철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떠올라서 더 씁쓸해져 버렸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이 소설집에는 어디선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참 많이 등장한다. 똑 부러지고 강하고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뭔가 부족하고 뒤통수를 치는 게 당연할 만큼 착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답답하고 힘 빠지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인도하는 이야기 속에서 쉽게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어나갈 수밖에 없는 흡인력과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면서도 외면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들었던 것 같다. 철저히 약자의 편에 서서 이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뿐인데도 이상하게 빨려드는 이야기. 그게 바로 소설의 힘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도 책 제목처럼 집이라는 공간, 귀가할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위로가 되는 사실을 발견한 것 자체만으로도 이 소설을 만난 보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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