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4
E. L. 닥터로 지음, 정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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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가족이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면.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나’는 어렸고 성인이 되어 그렇게 사라진 부모님의 진짜 진실과 마주하려 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까. 사소한 오해가 아닌 소련에 핵무기 기밀 사항을 넘기려 했다는 혐의로 사형당한 부모님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어린 시절 그렇게 부모님을 잃고 입양되어 함께 살아 온 여동생 수잔이 자살기도를 했다는 이야기로 이 소설은 시작되고 있다. 1953년에 일어난 로젠버그 부부 사건을 토대로 했으며 주인공 ‘나’ 다니엘은 그들 부부의 아들이다. 결코 남매에게 부모의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성장할수록 압박하며 달려드는 고통의 그림자는 수잔의 자살기도로 인해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든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로젠버그 부부 사건이 정확히 어떤 사건인지도 몰랐다. 거기다 책 제목만 보고 성경과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저자는 실제 사건에 허구를 더해 다니엘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다니엘이 동생의 자살사건으로 인해 부모의 진실에 다가가기로 마음먹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의 부모가 왜 그런 처사를 당해야만 했는지에 관한 자료 공부도 한다. 하지만 진실을 알기 위해서 피할 수 없는 인물이 있었다. 어린 시절 가족의 치과의사이자 부모님을 사형에 이르게 한 증인이었던 인물을 만나야 했던 것이다.

  그 과정까지 다가가기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로젠버그 부부 사건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며 다니엘의 현재 시점, 어린 시절, 부모님의 추억, 그 사건을 되짚는 과정들과 그 당시의 역사적 사건까지 나열되자 모두 엉켜버린 느낌이었다. 읽기는 멈출 수 없었지만 안개속을 헤매듯 과연 다니엘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개인간의 진실도 아니고 스파이 누명을 쓴 부모님의 진실과 맞서기엔 다니엘은 너무나 작아 보였다. 그가 완벽한 진실에 다가간다는 보장도 없었고, 고통으로 기억되는 부모님이지만 오히려 감춰두는 게 나은 건지도 모른다며 내 스스로 타협점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거기다 부모님의 진실에 다가가면 갈수록 순진하게 국가를 철석같이 믿고 이상주의에 젖어 있는 아버지와 마주하는 일이 점점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보통사람처럼 철저히 억울하다며 이런 처우를 하는 국가를 향해 신랄하게 욕이라도 해 주었다면 더 나았을 거란 안타까움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국가를 믿고 곧 누명을 벗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부모님에게 닥친 운명은 사형이었다. 그 과정에서 역사의 희생양으로 사라진 부모의 무죄의 여부보다 부모를 그렇게 만든 역사의 흐름에 더 중점을 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와서 부모의 진실을 밝힌다고 해도 사라진 부모가 돌아올 수도 없으며, 고통으로 얼룩진 남매의 어린 시절을 보상받을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예회복에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으며 무언가 통째로 잃어버린 그들의 유년시절이 혼란으로 치달아 종점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게 사건의 진실로 가는 길인 것만 같았다.

  저자는 로젠버그 부부의 유무죄를 명확하게 명시하지 않았으며 다니엘은 아무리 자신이 발버둥 쳐도 진실을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생 수전은 부모의 무죄를 밝히려 최선을 다하지만 실패하자 그녀의 운명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다니엘은 ‘모든 것은 포착하기 어렵다. 신도 포착하기 어렵다. 혁명의 도덕성도 포착하기 어렵다. 정의도 그렇다. 인간성도. 담배 자판기에 쓸 25센트짜리 동전도.’ 라며 부모의 사건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여전히 변하는 건 없었다.

  옮긴이는 ‘닥터로의 주된 관심사는 이 사건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 그리고 역사적 사건이 담론으로 변형되는 과정에 있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랬기에 나에게는 어려웠던 소설이었다. 어떠한 사건에 관해 명확하게 알고 있고 넓은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있을 때에 저자의 관심사에 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취약할뿐더러 그러한 해석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적 요양이 부족하기에 난해했던 소설이었지만 인간이 하나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이 얼마나 처절한지 적나라하게 봐버린 느낌이다. 결국은 이념에 희생된 자신의 부모님을 어떠한 방식으로도 구할 수 없었던 한 개인, 다니엘의 모습을 보면서 국가에 속한 국민인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는 회의감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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