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없어서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는 말 한마디
유선경 지음 / 동아일보사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바라봐야 합니다.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사랑한다고 하면 안 되지요. 그를 사랑하는 내가 들어 있는 눈동자,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해야 합니다. (17쪽)

  결혼을 하면서부터 이성에 대한 사랑은 남편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아픈 사랑도, 힘든 이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에 사로잡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웬걸? 내 사람이라고 단정지어버린 사랑도 미혼일 때의 사랑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나와 결혼해서 함께 산다고 그 사람 전부가 나의 것이고, 상대방도 내 모든 걸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거란 생각은 굉장히 큰 착각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래서 사랑에 관한 문구를 보면 내 사랑은 종착역에 달했으니 더 이상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의 내 모습을 보면 눈앞에 있는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고 있는지, 나에게 사랑을 달라고 징징대고 있진 않은지 진지해져버렸다.

  라디오 코너 속 글을 묶은 이 책은 사랑, 자아, 행복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민과 경험들이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첫 장인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미래에 대한 내 사랑이 아닌 현재 나의 사랑에 대해 많이 돌아보았던 것 같다.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지만 내 사랑이 얼마나 잘못되고 서투른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조금만 속상한 일이 있으면 남편 탓으로 돌리고 이 사랑을 후회하고 그러면서 아이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깜짝 놀라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내 서투른 사랑을 이 글 속에 대입하니 부끄러워진 것이다. 여러 번의 연애를 거친 후에 남편을 만났기에 어느 정도 사랑을 안다는 것도 착각이었고 살면서 더 사랑하겠다는 맹세도 몰랐기에 할 수 있었던 무모한 다짐이 아니었나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만들어낸 ‘가짜 욕망’이 그처럼 밑 빠진 독 같습니다. 그럴 바에야 시원하게 발로 걷어차 와장창! 깨버리고 그 자리에 자그마해도 밑이 튼튼해서 부으면 붓는 대로 조금씩 차올라 기분 좋게 출렁이는 달항아리 하나 들여놓고 허전할 때마다 품에 안아 어루만지고 싶습니다. (92쪽)

  그렇게 사랑에 관한 반성과 앞으로의 다짐 아닌 다짐이 지나간 후 맞이하게 되는 글은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글들이었다. 욕망, 특히 세상을 바라볼 때 내게 주어진 욕망을 바라보고 있으면 결혼 전보다 결혼 후에 더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결혼을 할 때부터 조건을 보려하지 않고,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사회가 만들어 낸 ‘가짜 욕망’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쓴 편이었다. 좋은 집, 큰 차, 남편의 직장, 여유로운 경제생활이 결혼 후 내게 채워지려는 욕망인 걸 깨닫고 그것들에 지지 않으려고 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고 현재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종종 불쑥 튀어나오는 욕망들에 나를 빼앗길 때가 있다. 인생의 진정한 만족은 자아라는 족쇄를 제거할 때 온다고 했는데 그런 욕망에 휘둘리는 게 자아가 강해서인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자신의 고통이 어디로부터 연유한 것인지 깊이 사유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고통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것이 없다는 뜻이니까요.(203쪽)

  소제목에 따라 묶여있는 글에 자연스레 나를 맡기니 마치 내 인생을 처음부터 미래까지 훑어본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떤 사랑을 했고 어떻게 사랑하고 있으며 내가 이룩한 것들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세월을 살아오면서 어떤 고통을 겪으며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 등 그 모든 것을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수 있었다. 때때로 반성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하는가 하면 여전히 답이 없는 질문에 고민하고 헤매기도 했다. 그 여운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어졌다. 삶에 진득하게 녹아있는 문제와 고민들을 저자의 글을 통해 다시 되짚어 봤다고 해도 내가 갖고 있던 고민이 단박에 해결된다거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피하고 있었으며, 그 문제에 제대로 다가가지 않았다는 죄책감과 함께 제대로 나를 들여다보고 타인을 들여다보면서 제대로 살아가고 싶다는 희미한 다짐만이 내 마음속에 조금 솟아났을 뿐이다.

삶의 가장 큰 목적은 삶 그 자체니까요.(124쪽)

  어지럽게 내 머릿속을 떠돌던 이런저런 생각들 가운데서도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과 일치하는 문장이었다. 사랑, 욕망, 자아 행복 등 모든 것을 돌아보는 가운데서도 현재 내가 살아있기에, 이 삶을 유지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삶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내 삶을 모두 훑고 지나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되찾은 소중한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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