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람이야
리쯔룽 글, 쉬원치 그림, 김은신 옮김 / 키득키득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한껏 쌀쌀해진 날씨 덕분에 밖에 나가기만 하면 칼바람을 맞는 요즘이지만 나는 바람을 좋아한다. 겨울바람은 너무 차가워서 좋아하지 않지만 아주 가끔 상쾌한 기분을 느낄 정도로 각각의 바람 냄새를 알고 있다. 특히 비가 오기 전에 부는 바람에서 나는 냄새를 좋아한다. 온갖 냄새를 내포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비가 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바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봄이나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좋아 일부러 산책 삼아 걸었던 적도 많았다. 그런 길을 걸었던 곳은 대부분 시골이었고 지금은 조금만 걸어도 자동차 매연과 소음으로 그런 여유를 만끽할 수 없어 외출을 해도 볼 일만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게 바람을 한참 동안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아이 책이 있는 책장을 훑어보다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 꺼내보았다. 그리고 글과 그림이 마음에 들어 이 책 좋네 라며 혼잣말까지 하게 됐다.

  아이들 책, 특히 그림책을 보고 있으면 주제와 이야기가 너무나 다양해 내 마음에 드는 책보다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는 책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커 가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려는 심산이 아닐까 싶은데 어른인 나의 시선에선 이러한데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늘 궁금하다. 아직 말을 못하는 아이에게 물어볼 수도 없으니 어서 말을 해서 엄마랑 같이 동화책을 읽고 이야기도 나누자고 부추기지만 알아먹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다 우연히 꺼내서 읽은 이 책에서는 어른인 내 마음까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 바람을 좋아했던 옛 추억까지 꺼내들게 되었다.

  바람이라고 스스로를 밝히고 나무와 풀잎, 꽃, 구름, 호수 등이랑 장난을 치며 논다며 어떻게 노는 지 상세하게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즐거운 모습들을 보여주다가 종종 우울할 때가 있다고 말하는 바람. 소리, 색깔, 향기, 모양이 없는 모습에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고민까지 털어놓는다. 나는 어디 있는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하는 모습에서 실재하지만 종종 존재감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런 바람은 우울할 때 어느 창가를 찾아간다고 했다. 그 창가에는 우울한 표정의 아이가 있고 바람은 그 아이와 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유리창을 두드리고 꽃향기를 보내도 반응이 없다. 그러다 어느날은 아이가 열어 둔 문으로 잽싸게 들어가 그 아이에게 자신의 존재를 낱낱이 드러냈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날리고 들고 있던 악보가 날렸지만 아이는 우울해하지 않고 웃음을 터트리며 바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바람아! 바람아 안녕! 가지 말고 기다려 줘! 나는 너랑 놀고 싶어!

  냄새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자신이지만 그 아이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바람은 기뻐한다. 그리고 아이가 자신을 부르면 단숨에 달려가 아이의 미소를 따라 춤을 추고, 머리카락 사이에서 훌훌 장난을 치며 논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바람의 이야기와 함께 섬세한 수채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단순히 아이를 위해 억지로 읽고 마는 동화가 아니라 아이보다 오히려 내 맘 속에 더 오래 남을 것 같은 이야기로 느낀 것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들, 그 위에서 행복한 듯 노는 곤충들과 하늘이며 호수며 모두 바람이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마치 저자와 그린이가 한 사람인 듯 글과 그림이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글과 그림이 일치하는 책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을 더 오랫동안 바라봤고 글과 그림 모두 내 마음 속에 담으면서 바람을 좋아했던 내 모습을 기억해 냈는지도 모른다. 따스한 햇살 속에서 내 뺨을 간질이던 바람. 그런 바람과 함께 스르르 잠이 들고, 그런 바람을 친구 삼아 책을 읽던 순간들. 왜 그런 순간들을 잊고 살았으며 나이가 들어서는 바람이라고 하면 먼지를 일으키고 차가운 것이라고만 인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내 마음 속의 차가운 바람의 이미지를 부드럽고 따스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아 이 책이 참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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