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퍼 씨의 12마리 펭귄 반달문고 19
리처드 앳워터.플로렌스 앳워터 지음, 로버트 로손 그림, 정미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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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면서부터 책이 가득한 방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다 책이 3면을 차지하는 방을 갖게 되자 책이 가득한 집에서 살고 싶어졌다. 그리고 몇 년 후 거실과 방 하나에 책이 가득한 집에 살게 되었는데 과연 나는 행복한지 잘 모르겠다. 갑자기 책을 몽땅 사서 책들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차근차근 모으고 읽었음에도 책이 애물단지 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사할 때, 읽어야 할 책이 읽은 책보다 넘칠 때, 책장 때문에 집이 좁아지고 먼지가 쌓일 때, 정작 책 읽을 시간이 없을 때가 그렇다. 하지만 언젠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 책들을 반드시 다 읽을 순간이 올 거라 생각하기에 절망하기보단 인내를 키우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마음속에 하나쯤 자신이 꼭 바라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무언가를 너무 좋아해서 갖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 파퍼 씨에겐 추운 곳의 이야기가 그랬다. 페인트칠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그지만 결혼 전에 이런저런 모험을 하지 못한 걸 후회하면서도 추운 곳의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쓴다. 아내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질려 하지만 파퍼 씨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에 넋을 빼고 이야기하거나 깊은 밤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추운 곳의 이야기를 읽곤 한다. 그러던 그에게 펭귄 한 마리가 배달되어 온다.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에서 퀴즈를 맞히고 선물로 받게 된 게 바로 펭귄이었다.

  파퍼 씨는 추운 곳에 직접 가지 못한 대신 펭귄을 키울 수 있게 되어서 무척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펭귄이 일반 가정집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게 하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파퍼 씨는 자신의 안락함도 포기한 채 펭귄에게 최대한 그간 지내온 환경을 제공하려 애쓰지만 새끼를 낳아 펭귄이 12마리가 되었을 땐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고 만다. 거기다 따뜻해진 날씨 때문에 펭귄들이 기운을 잃어가자 대책을 간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파퍼 씨는 늘 몽상에 빠져 있고 책임 있는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진 않지만 천성적인 긍정적인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을 알게 되자 이 이야기의 끝은 행복하게 이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집어 들게 된 책인데 책장을 놓을 수 없는 흡인력도 있었지만 결말이 궁금해서 책장을 부지런히 넘겼다. 파퍼 씨가 펭귄들과 함께 살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내게 전해지는 듯 했다. 분명 늘어난 펭귄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 있고 더 빠듯해진 살림과 엉망인 집, 아내의 잔소리가 있었음에도 파퍼 씨는 펭귄들과 떨어져 지내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펭귄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면 다른 곳으로 보내 버렸겠지만 어떻게든 함께 지내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그가 얼마나 추운 곳을 갈망하며 그곳에서 온 동물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스런 펭귄들을 널리 알리고 지키긴 했지만 영원히 펭귄들과 살 수는 없었다. 파퍼 씨가 지켜야 할 가정도 있었고 무엇보다 환경이 펭귄들에게 맞지 않았다. 파퍼 씨는 펭귄을 선물 받은 항해를 떠나는 드레이크 제독에게 펭귄을 보내기로 한다. 펭귄을 보내면서 엉엉 울면서 인사하는 파퍼 씨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해졌는데 드레이크 제독은 아무렇지 않은 듯 파퍼 씨에게 함께 동행 하자고 한다. 오로지 이 펭귄들이 주인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몇 년 동안 먹고 살 돈이 마련되어 있어 아내도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고 파퍼 씨는 꿈에 그리던 탐험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파퍼 씨는 분명 북극 탐험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 할 것이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그것이 이뤄졌을 때의 기쁨. 나이가 들면서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파퍼 씨는 오래 오래 간직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점점 속물처럼 변해가고 물질에 의존하고 어떤 것을 얻어도 쉽게 마음이 식어버리는 삶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파퍼 씨는 신선한 자극이 된 셈이다. 현재 내가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릴 수 없다고 해서 풀 죽어 있지 않는 것. 파퍼 씨가 탐험을 떠났던 것처럼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기다려봄직하고 열심히 살아볼만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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