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문제들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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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이 소설을 지나칠 뻔 했다. 매력적인 표지를 열어젖히는 순간 불편한 진실, 무관심하게 봐왔던 폭력적인 현실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몇 번을 들췄다 덮었다 반복했는지 모른다. 초등학생인 황순구가 자기가 당한 폭력을 '슈렉'이라 불리는 아영에게 그대로 행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이러한 장면들을 '사소한 문제들'이라고 볼 수 있을까란 물음 때문에 책 안의 이야기에 갇혀 버린 것이다. 그러나 불편한 장면을 조금 건너뛰자 소설의 새로운 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헌책방 주인 두식과 아영의 만남이 그랬다.

  이 책을 읽고 저저와의 만남의 자리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잔혹하고 폭력적인 내용 때문에 남자가 쓴 소설이 아닐까란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초등학생은 너무 심하지 않나, 최소한 중학생 정도는 되어야지'란 질문을 받았다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자는 '중학생은 되나요?'란 질문을 던지고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재밌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단다.

  저자는 초등학교 때 왕따를 체계적으로 시켜보기도 하고 되레 왕따를 당해본 적도 있다고 했다. 작품 속처럼은 아니었지만 숨기려고 해도 어느 정도 저자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로 르포를 쓰려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누구나 한번쯤 학교 다닐 때 왕따를 당하고 시켜 본 경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초등학교 때 시골의 작은 학교라 10명도 되지 않은 아이들 틈에서 왕따를 당하고 시킨 경험이 있다. 왕따를 당했을 땐 정말 자존감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왜 학교에서 이런 일을 당해야 하고, 나는 왜 이렇게 못났는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 왕따에서 헤어 나오고 내가 왕따를 시킬 때는 뭔지 모를 짜릿함과 죄책감이 서려 이런 기분은 뭔가 하는 당혹감에 빠지기도 했다.

  아영과 황순구 같은 인물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소설 초반에 내가 느꼈던 어두운 면이나 폭력적인 면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저자는 두식을 등장시켰다.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보이고 싶었고, 자발적인 소수자인 두식과 어쩔 수 없는 소수자인 아영의 만남을 통해 내면 안에서 스스로 생긴 폭력도 사람을 망가트릴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는 뜻을 내비쳤다.

 

  반면 두식과 아영은 어떻게 보면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가장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두식이 성적 소수자라는 것 이외에는 평범한 남자인 만큼, 어쩌면 헌책방이란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에 아영의 시선으로 내려올 수 있었고 초등학생인 아영과 대화가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아영은 엄마와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 앞에서보다 두식 앞에서 더 어리광을 피우며 초등학생다운 면을 보이기도 한다. 폭력과 왕따 앞에 내놓인 아영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숙한 모습이었는데 유독 두식 앞에서 만큼은 솔직한 모습을 보여 개인적으로 둘의 독특한 동거 장면이 소설 속에서 제일 즐거웠다.

  황순구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황순구는 아영에게 자기가 받은 폭력을 그대로 세습하는 그야말로 아영의 삶을 파괴하는 인물로 나온다. 폭력은 학습된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 또한 황순구다. 두식을 여관에서 처참하게 폭행한 용복이란 인물도 같은 라인으로 볼 수 있는데, 피해자가 학습되는 과정에서 가해자로 전환되면서 덩달아 악해지고 강해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어 참으로 씁쓸했다.

  가정이 무너지고 폭력과 무관심이 난무한 이야기를 그려냈지만 "가족은 울타리다"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저자의 말이 울림이 되었다. 그랬기에 가족 안에서 소설을 쓸 수 있었고 가정이 무너져도 울타리가 무너지는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들었던 어둡고 폭력적이고 우울했던 마음들에 조금은 의미를 찾은 것 같았다. 어찌 되었건 울타리 밖의 세상이 어떤지 처절하게 경험했지만 가족이란 울타리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잘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이런 이야기는 더욱 더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가는 울타리가 영원히 튼튼하리란 법이 없기에 일단 그 안에서의 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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