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주사위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4
마크 앨퍼트 지음, 이원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직장을 다닐 때 불금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뭘 할까 늘 고민하면서 즐겁게 보내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주부가 된 이후로 불금이란 단어는 나에게 큰 의미가 없어졌지만 미혼일 때의 불금을 떠올려보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나마 칼퇴근을 해서 직장동료들과 껍데기에 사이다를 먹으러 가서 늦게까지 신나게 수다를 떠는 게 남다르게 보내는 금요일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런 일은 가끔이었고 나의 불금은 대체로 퇴근하자마자 밥만 먹고 누워 뒹굴 거리는 거였다. 홀로 자취하던 시절,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기에 내 뒹굴거림의 친구는 늘 책이었다. 금요일 저녁만큼은 한주의 스트레스를 풀어버릴 속도감 있는 재밌는 책을 읽는 것. 그것이 내가 누릴 수 있는 금요일의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두툼한 책도 순식간에 읽어버릴 수 있는 속도감. 그런 책을 만나면 눈에 불을 켜고 책장을 넘기기 바빠진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너무 궁금한 나머지 배고픔과 졸음도 이긴 채 마주하고 있는 책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들이 참 좋았다. 일단은 철저히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어 현실을 도피할 수 있었고 그런 재미에 빠지다보니 스스로도 도피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책장을 덮고 난 뒤 밀려드는 현실감에 허탈할 때도 있지만 그런 공간이동(책을 통한 공간이동이지만)야 말로 책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인 셈이다.

 

  『신의 주사위』도 금요일에 읽기 좋은 속도감과 재미를 가져다 준 책이었다. 두툼한 책을 순식간에 읽어버릴 정도로 결말이 궁금해서 쉼 없이 책장을 넘겼다. 주인공인 컬럼비아 대학 교수인 데이비드는 20년 전 스승이었던 물리학과 교수 클라인만이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는다. 클라인만 교수는 데이비드에게 열쇠라며 일련의 숫자를 알려주고 숨을 거둔다. 그 열쇠가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데이비드는 FBI에게 체포되고, 아인슈타인의 통일장이론의 숨겨진 비밀을 캐려는 사이먼에게도 쫓긴다. 그 사이에서 스승이 알려준 비밀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지를 알아가는 데이비드의 숨 막히는 추적이 이어진다.

 

  아인슈타인이 세 명의 수제자에게만 남긴 비밀은 어떠한 파장을 일으키기에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일까. FBI와 사이먼이 데이비드를 쫓는 목적은 같으나 사이먼의 배후의 인물은 이 책의 최고의 반전 인물로 다가온다.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까지 그것을 이용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대립이 시종일관 흥미롭게 펼쳐진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OCN 채널을 너무 자주 접하게 되는데 꼭 그 채널 속에서 방영할 법한 이야기였다. 물리학과 연관된 소설이라 자칫 어렵지 않을까 걱정을 했으나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 흐름을 읽는데 문제가 없었다. 소설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이 그려졌고 아인슈타인이 지키려 했던 비밀이 무엇인가를 화두로 삼아 독자에게 궁금증을 자극시켰으며 쫒기는 자와 쫒는 자가 삼박자를 이루어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반면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듯이 조금은 빤한 흐름이 이어진 게 아쉽게 다가오기도 했다. 결말에서 그나마 독자의 예상을 깨고 온전한 평화가 찾아오지 않게 한 점, 새 출발을 하게 된 점들이 중심을 지켜주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중반부가 넘도록 통일장이론에 숨겨진 비밀의 언급이 별로 없이 쫓고 쫒기는 것만 반복해서 조금 부진한 감도 있긴 했지만 이런 책이 아니었다면 과연 물리학에 관련 된 책을 들춰나 봤을까 싶다. 관심이 있어 과학에 관련된 책들도 몇 권 구비해 놨지만 통 책장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소설을 통해서 완전히 이해는 안가더라도 과학에 관한 호기심도 조금은 생겨났다. 기회가 된다면 쉬운 과학책부터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는 스릴러를 만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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