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만 더 아프고 싶다 문학동네 동시집 18
정연철 지음, 이우창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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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바라볼 때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아갈까? 아마 이기적인 마음을 가득 담은 채 나보다 낮은 곳보다 높을 곳을 보며 부러운 눈길로 보고 있을 것이다. 자꾸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내 스스로 정한 기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면 재빨리 내 모습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세상은 점점 악해져 가지만 분명 따뜻하고 다정다감하며 내가 미처 느끼지 못한 행복을 주기도 하는 곳인데 왜 자꾸 이렇게 편협한 생각만 가지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런 나의 마음이 안타깝다는 듯 순식간에 녹여버린 책이 있다. 거창한 고전문학도 아니고 메시지를 가득 담은 자기 계발서나 삶을 돌아보는 인문학 책도 아니다. 바로 동시집이다. 한참 책을 읽는 행위에 집중할 때는 이런 동시집에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었다.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읽어대며 동시라면 초등학교 때 읽고 마는 것이라고 생각해 버렸을 것이다. 책을 읽는 행위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려고 하자 이런 동시집도 조금씩 내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동시집에서 너무나 가슴 찡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만나 버렸다.

 

애기 할머니

 

할머닌 나하고 똑같아요 / 입속에 사탕 두 개나 넣고서 / 또 내 사탕을 탐내요 / 한 해 지나니 내 동생이 되었어요 / 기저귀 차고 칭얼대기도 잘해요 / 아빤 그래도 / 아이고, 우리 어무이 똥 싸싰네 / 똥도 우찌 요리 애뿌노, 해요 / 그러다가 할머닌 진짜 애기가 되었어요 / 얼마 뒤엔 엄마 배 속으로 들어가고 / 그다음엔 별이 된대요 / 난 할머니가 별이 되는 게 싫어요 / 할머닌 날마다 날 업어 키웠는데 / 난 아직 할머닐 한 번도 업어 드리지 못했거든요 / 어부바, 하고 업을 때까진 / 기다려 줘요 / 할머니 / 꼬옥요

 

  애기가 되어 버린 할머니를 보면서 기다려 달라고 말하는 아이. 그런 할머니를 지극정성 모시는 아빠. 요즘에는 흔하게 만날 수 없는 이야기다. 우리도 늙어가고 있는데 늙음을 부정하며 늙은 사람들을 고리타분하고 귀찮게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게 부모님이라도 그럴 때가 허다해 내 스스로도 부끄러웠던 적이 많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할머니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어머니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 가족이 나온다. 이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인의 시선에 경외감이 들 정도다.

 

좋은 시인을 한번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그늘진 곳을 바라볼 줄 아는 눈을 지닌 분이 아닐까 합니다. (중략) 또한 좋은 시인이란 그 그늘을 빛으로 바꿀 줄 아는 분이 아닐까 합니다. (100쪽, 해설)

 

  좋은 시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이 시집을 읽으면서 이 시들은 참 좋고, 이런 시각을 가지고 마음으로 시를 쓸 수 있는 저자가 좋은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영상 시인은 이 시집을 향해 ‘힘약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눈과 그들의 아픔을 빛으로 바꾸려는 몸짓이 숨어 있는 시집’이라고 했다. 해설로만 읽을 때는 이 말이 어렵고 먼 얘기로 들릴 수 있으나 이 시집을 읽고 나면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게 된다. 이미 시집을 읽은 마음속에 빛이 환히 밝혀 있기 때문이다.

 

그늘 손

 

한여름 한낮, / 걸음도 무거운 할머니 / 횡단보도를 걸어가더니 / 헌옷 수거함 옆에 보따리 놓고 / 신문지 깔고 앉아 / 마늘을 까다가, / 땡볕에 시든 깻잎 같은 얼굴로 / 파를 다듬다가, / 머릿수건 벗어 땀을 닦을 때 // 헌옷 수거함 / 주춤주춤 그늘 손을 내밀며 /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이 시를 읽을 때만해도 길을 가다 종종 보는 채소를 파는 할머니를 나타내는 거라고 생각하고 휙 넘겨 버렸다. 그러다 해설을 보고 헌옷 수거함이 그늘을 만들어 할머니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마음이 툭 끊어질 듯한 안도감과 따뜻함이 밀려들었다. 할머니에게 어느 누구도 그늘을 만들어 주지 못하던 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헌옷 수거함이 그늘을 만들어 준다니. 해의 위치에 따라 그늘이 생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할머니의 고루함까지 덮어 주는 헌옷 수거함의 마음 씀씀이로 느껴졌다.

 

  지금껏 동시라함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마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 주제들이 일상의 사건이나 사물을 보는 시선의 변화가 전부라고 여겼었다. 이 시집을 읽고 나니 거기에 더 나아가 ‘세상의 그늘진 곳을 바라볼 줄 아는’ 시선도 있음을 깨달았고 그런 시선이 이렇게 뭉클하게 다가올 줄도 몰랐다.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세상에 맞춰서 살지 못하면 어떠랴. 끈끈한 가족이 있고 그런 가족을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이 시들처럼 종종 마음은 아플지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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