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라지지 마 - 노모, 그 2년의 기록
한설희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9남매 중의 막내다 보니 내가 30대 초반임에도 엄마의 나이는 일흔이 넘었다. 나와 꼭 서른아홉 살 차이 나는 엄마.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종종 아이를 일부러 엄마 품에 안겨 놓고 사진을 찍곤 한다. 핸드폰으로 찍는, 그야말로 평범한 사진에 불과하지만 다음에 아이가 이 사진을 보고 외할머니가 너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싶었다.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날 엄마.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그 사실을 슬픔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기억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책 제목을 보고 ‘엄마’라는 이름만으로도 끌어 낼 수 있는 온갖 감정이 난무하는 책인 줄 알았다. 분명 엄마를 떠올릴 때면 기쁨보다 애잔함과 미안함, 고마움이 교차하는데 그런 기분을 끌어내는 책을 만나면 괜히 가라앉아 버린다. 엄마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생각보다 늘 상주하고 있는 죄책감은 더 짓눌려져 더 미안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과 우려로 책을 펼쳤는데 정말 소소하고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내 엄마도 저렇게라도 기억하고 싶은 사진과 글이 가득했다.

 

  일흔을 앞둔 딸이 아흔이 넘은 엄마의 사진을 찍었다. 아흔이 넘은 저자의 엄마는 방 밖으로 나가는 걸 극도로 싫어해 대부분이 방에서 찍은 사진이며 공간을 조금 벗어나더라도 집 밖의 사진은 거의 없다. 아흔이 넘은 노모(老母)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쁜 모습을 볼 때면 예전에 잠깐 들었던 사진 교실에서의 사진 찍는 법이 생각이 났다. 외형적인 조건도 필요하지만 대상을 마음으로 바라보고 찍을 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사진이 나온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저자도 엄마의 사진을 찍으면서 ‘대상을 혼신의 힘으로 사랑하는 데서’ 좋은 사진이 나온다고 고백했다. 현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타인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채워진데서 이 사진집은 지극히 은밀한 사진이 될 수도 있다. 또한 기쁨이든 아픔이든 그 안에 나의 엄마를 대입하지 못한다면 나와 상관없는 낯선 사람이 등장한다는 거리감을 좁힐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나처럼 그곳에서 나를 기다려준 엄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97쪽)

 

  초등학교 때는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 때문에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늘 집은 비어 있었다. 내 위의 언니와 오빠들이 학교 때문에 객지로 나가 나 혼자가 되었을 때의 그 썰렁함과 허전함은 늘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란 상상으로 채워지곤 했다. 결혼한 언니와 10년을 살면서 조카를 떼어놓고 일하면서 겪는 온갖 고충을 목도했고, 그 곁에서 강제와 자진으로 조카들을 돌보면서 나는 절대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는 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았고 아이에게도 엄마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어쩌다보니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나의 바람대로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늘 아이 곁에 있어서 마음만은 편하다. 하지만 내가 아이 곁에 오래도록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앞에 종종 눈물짓곤 한다. 아이가 나를 보며 웃어 줄때마다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만 시간이 흘러서도 아이가 나를 늘 같은 곳에 있어 준 엄마로 기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우리 엄마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 그대로 말이다.

 

늦든 빠르든 우리는 언젠가 고아가 된다.

내 머리 위로 받치고 있던 커다란 우산이 순식간에 거두어지고,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비와 눈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는 것.

그것이 부모를 잃는 경험이 아닐까.(20쪽)

 

  며칠 전 엄마와 통화를 하다 엄마가 그런 말을 했다. 막내들은 부모랑 함께 있는 시간이 적다고. 그것이 막내의 숙명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 딸아이가 외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도록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있어달라고 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낯간지러운 소리는 못했을 텐데 조금씩 나이를 먹고 엄마가 되어 보니 생각날 때마다 엄마에 대한 사랑고백(?)은 미루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래도 여전히 서툰 고백은 가끔이지만 이 책을 보면서 꼭 말이 고백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방이라는 한 정된 공간, 엄마라는 동일한 피사체’로 인해 시도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엄마를 바라보면서 품었을 사랑의 감정은 사진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와 상관없는, 혹은 나를 밀쳐내기만 한 세상의 온갖 것들을 마음에 품고 살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를 사랑해주고 기다려준 엄마를 마음속에 품었던 적은 얼마나 될까? 말로 하는 고백이 서툴다면 저자처럼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좋은 거라는 사실을 알며 오늘도 엄마에게 마음속으로 되뇐다. 나의 엄마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나중에 내 아이에게도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최고의 찬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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