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이
아모스 오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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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일행에게 혹시나, 시간이 허락해서 서점에 들를 수 있다면 아모스 오즈 책을 구입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메모지에 저자의 이름을 스펠링으로 써주고 당부하면서 한권이라도 나에게 오길 바랐다. 그러나 단체로 떠난 일정이라 시간을 따로 낼 수 없었고 서점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해 책을 구입하지 못했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내심 아쉬웠지만 언젠가 원서를 살 수 있는 날이 있겠지 싶어 열심히 번역서를 기다리게 되었다.

아모스 오즈의 번역서는 띄엄띄엄 출간되었다. 온라인 서점에 지정해 놓은 출간 소식 문자가 오면 바로 구입할 정도로 아모스 오즈는 정말 좋아하는 작가다.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똑 부러지게 설명을 할 순 없어도 잔잔한 삶의 흐름을 드러내는 섬세한 문장이 좋다고 말 할 수는 있다. 국내에 출간된 작품을 모두 읽어보았지만 그렇다고 그 작품들이 다 좋다고는 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완성도에서 오는 호감을 뛰어넘은 익숙함이다.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정도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책장을 덮으며 외국어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책들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욕망만 앞서고 얼마나 공부해야 원서를 막힘없이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아모스 오즈의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늘 드는 생각인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런 갈망이 일고 말았다. 과연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다음 번역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조바심이 부른 앞선 욕심이다. 국내에 막 출간된『친구 사이』를 아껴서 읽었음에도 아직 만나보지 못한 작품을 향한 궁금증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집단농장의 한 형태인 키부츠를 배경으로 한 8편의 단편을 만나면서도 온통 저자 생각뿐이었다. 30여 년간 키부츠에서 생활한 저자이기에 무엇보다 그곳의 생활을 잘 알고 있을 테고 작품 속 어딘가에 저자가 머무르고 있다 생각하고 구석구석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공동체로 이뤄지는 집단농장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썩 행복하지는 않았으나 왜 사람들은 스스로 그곳에 머무르면서도 스스로 욕망을 거세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끝내 독자의 몫으로 남았다. 공동체 생활이다 보니 개인의 자유와 소유욕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점점 자신이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잃어가는 것만 같았다.

남편이 이별을 통보하고 다른 여자의 숙소로 들어간 후 어떠한 분노도 드러내지 않은 여자 오스낫과 키부츠란 공간을 답답해하면서도 삼촌이 모든 학비를 대주겠다며 이탈리아로 오라는 요청에도 우유부단하게 머뭇거리는 요탐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색채를 잃어버린,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같았다. 키부츠에 속하지 않은 바깥세상에서도 또렷한 의지를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키부츠라는 공간이, 그곳에서 지켜야 하는 모든 규칙과 평등을 가장한 불평등이 마냥 답답하기만 했다. 의지박약인 내가 저런 공동체 생활에 속한다고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

한 공간의 이야기이기에 8편의 이야기는 끊겨져 있으면서도 이어져 있었다. 등장인물이 얽히고 있었고 주인공이 아닌 배경인물로 등장할 때 새로운 면모를 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반가움이 일었고 어떤 소식이 들려오는지 주시하게 되었다. 병든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소년 모시의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뭉클했고 후에 에스페란토 어를 배우로 오는 모습만 봐도 그냥 듬직했다. 하지만 하나 남은 열일곱 살의 딸이 자신의 친구와 동거를 하게 되는 이야기며, 아이도 공동체로 키우는 규칙에 따라 부모와 함께 잠들지 못하는 아들이 탁아소에서 왕따를 당하자 가해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키부츠라는 공간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평등하게 배분되고 기회가 주어지는 그곳이 낙원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나, 늘 불평등에 시달리면서 세상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해 허덕이는 나에게는 그곳이 갑갑하게만 느껴진다. 무엇을 또렷이 잘할 필요도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에 충실 하는 것만이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모습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 단일화되기 딱 좋은 곳으로 보여졌다.

그럼에도 그곳을 오로지 다른 세상 보듯 무관심 할 수 없었다. 그곳이 갑갑하게 느껴졌던 배경에는 이미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경험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의무교육을 통해 단체생활을 불편함, 차별, 불평등, 분출할 줄 모르는 열등감과 불합리화들을 이미 겪었다. 그래서 그곳이 더 갑갑하게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로지 공동체 공간이라는 사실에만 얽매여 있으면 저자가 그려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놓칠 수 있다. 어느 곳이나 사회가 아닌 곳이 없듯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대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삶의 잔혹함을 못 본 척한다는 것은 어리석고도 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최소한 알고라도 있어야죠.(15~16쪽)

우리가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문학을 통해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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