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한다는 것의 행복 - 장애를 가진 나의 아들에게
앙투안 갈랑 지음, 최정수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장애를 지닌 아이를 둔다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일이지. 그런데 나는 굳이 왜 독자들을 짜증나게 할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을 상세히 이야기하는 걸까? 125~126쪽

 

  이 책의 부제 '장애를 가진 나의 아들에게'를 보고 안일하게도 어쩌면 주변에서 익히 들어온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렸다. 이런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저자가 말한 ‘전적으로 개인적인’ 일에, 그야말로 타인으로서 개인적인 소견을 가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미안해졌다. 내가 직접 경험하기 전에 타인의 고통의 무게를 알 수 없듯이 무관심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글로 만날 수밖에 없는 장애를 지닌 아이를 둔 가정의 이야기. 전적으로 모든 것을 체감하고 공감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만나게 타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장애를 지닌 아이를 둔 가정이라고 하면 이상하게도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든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불행’을 어떻게 말하고 전해야 할까? 아직도 우리의 시선이 성숙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는데 저자는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입을 빌려 ‘행복은 잘 견뎌낸 불행일 뿐인지도 모른다’ 라며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모호하게,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게 만든다. 오히려 사랑을 가득 담은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어 마주하는 이가 치유되게 하는 힘이 있다.

 

  물론 장애를 지니지 않았더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아이를 선택할 수 없듯이 저자는 그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였다. 받아들임의 바탕엔 사랑이 있었고, 아이로 인해 변해버린 평범한 일상과 체득한 것들을 담담히 드러낸다. 소아과 의사지만 아들을 고치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7통의 편지를 아들에게 쓴다. 마흔 살이지만 아직도 아이인 아들은 이 편지를 읽을 수 없지만 그간의 고통, 환희, 슬픔 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긴 편지에는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모두 담겨있다. 아들이 편지를 읽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사랑을 듬뿍 담아 정성스레 써 내려갔다. 어느 부모에게나 자식은 특별하기에 아이에게 들려주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적었다. 처음 장애를 겪었던 일부터, 받아들이고 이겨내고, 갈수록 사랑스러워지는 마음, 안타까운 마음을 다양한 시선으로 풍부한 편지가 되게 만들었다. 책, 미술, 음악 이야기도 나오고 수많은 추억들을 글을 통해 아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떠한 시선과 경계를 신경 쓰지 않은 오로지 아들을 위한 편지였다. 그 담담함 때문에 익숙하게 봐왔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님을(어떤 이야기도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아닌데 왜 이런 어리석은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일까?), 사랑하는 마음이 커 갈수록 아이가 존재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들어오게 만들었다.

 

글쓰기는 묻혀 있는 기억들을 수면으로 다시 솟아오르게 하지.(152쪽)

 

  묻혀 있는 기억들 가운데 결코 행복한 기억만 있는 건 아니었을 텐데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모든 기억을 드러낸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도 행복할 수도 있지만 저자 스스로도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면서도 이렇게 담담하고 차분할 수 있는 이유는 장애를 가진 아들과 함께 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늘 불행하다고 느꼈다면 이런 편지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걱정을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듯이 인생의 말년을 맞이하는 부모의 사랑과 걱정이 그대로 묻어있어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저자의 아내는 사랑만이 생명의 근원임을 깨닫고 아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쏟아 부었다고 했다. 저자는 그것을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했지만 그런 시행착오가 있었던 만큼 아들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이 편지 속에 녹아들었다. 때론 자신의 세계에 너무 도취되어 철학적인 부분을 드러낼 때는 이해를 못하고 갸우뚱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이 스스럼없이 드러나서 오히려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장애를 지닌 아버지는 이러이러한 편지를 썼을 것이란 편견 없이(그런 편견을 기준을 과연 누가 알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가족 간의 얽힌 세월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좋았다. 아버지의 꼼꼼한 편지만큼이나 꼼꼼한 번역 덕에 그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잠시 읽기를 멈추고 다른 일을 하다 꺼내서 읽어도 좋을 만큼 사랑과 긍정이 있었다. 지나온 세월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지레짐작 하지만 그 힘든 과정을 꼬깃꼬깃하게 펼치지 않고 온유함으로 광활하게 펼쳐 주어서 도리어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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