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군대의 장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1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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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전쟁미망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분들의 나이는 80대부터 90대 초반이었는데 꽃띠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정말 애절했다. 길게는 몇 년, 짧게는 몇달을 함께 산 남편의 사진을 보면서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며 애틋함을 넘어 세월의 절절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 중에는 유해를 찾지 못해 현충원에 이름 석 자만 새겨진 미망인의 사연도 소개되었는데 『죽은 군대의 장군』 이 떠올랐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졌던 의문이 한 전쟁미망인의 사연을 보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20년 뒤 자국 군인의 유해를 찾는 일. 자신의 임무이긴 했으나 그 일 자체가 모순이었다. 게다가 소설의 배경은 1960년대다. 군인들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그들의 신장이며 자잘한 특징, 인식표를 중심으로 땅을 파헤치며 유해를 찾는 일이었는데 과연 그 유해들이 정확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장군과 함께 동행한 신부(神父)는 한 가족의 부탁을 받고 Z대령의 유해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그들이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은 지난했다. 외국인 장교의 신분으로 알바니아 일꾼들을 써가며 유해를 발굴하는 일은 또 다른 전쟁을 치르는 일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칼슘의 왕국에 발을 들여놓는 이 기분'이라고 표현했을까. 그들은 과거, 그것도 전쟁이 치러진 땅을 찾아 죽음의 흔적을 다시 일으키는 힘겨운 임무를 맡고 있었다.

 

  타국에 묻힌 병사들의 의중을 들을 수는 없지만 그들은 자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을까란 의문을 갖게 된 것은 책의 초반부에 나오는 이 문장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유해를 찾아 나서는 일보다 더한 위선은 없어. 나라면 그런 호의는 사양하겠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병사 하나하나의 의중을 알 수 있는 길이 없었고 남겨진 가족들은 힘겹게 그들을 유해를 원한다는 것을 알 뿐이었다. 20년의 세월이 지나서 그런 유해를 찾는 장군도 장군이지만 그런 그가 알바니아로 떠나기 전에 유해를 찾아달라고 찾아오는 가족들의 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쓸쓸했다. 불확실한 정보와 간절함만 가득 담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군은 그러겠다고 무마시켰다. 과거를 찾아 가는 일. 그것도 전쟁의 잔상을 뒤져 죽음을 꺼내야 하는 일을 하는 장군의 삶은 미래로 한발짝도 못 디디며 뒤로만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게 될 거란 나의 예상의 뛰어넘은 것은 외국인 장교의 시선 덕분이었을 것이다. 20년이 지난 유해를 찾는 것도 달갑지 않고,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전쟁의 참상을 보게 될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제3자의 시선으로 흔적을 보면서 당시의 상황을 좇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우울하거나 어둡지 않았다. 온통 잿빛으로, 생명력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소설의 전반전인 분위기 속에서도 조금씩 빛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를테면 축구장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한 여인을 바라보는 것과 유해를 파헤쳐야 하는 상황은 굉장히 대조적이었는데 과거의 죽음이 아닌 현재의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런 와중에 Z 대령의 행적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모든 진실을 마주한 뒤 힘들게 찾은 유해가 든 자루를 뻥 차버린 장군의 행동에서 그들이 당면하고 있었던 모순에서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전쟁 통에 어느 누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지킬 수 있었을 것인가. 그래서인지 Z대령도 장군의 행동도 비난 할 수 없었다. 장군과 독자인 우리가 목도한 것은 '추악하고 부조리한 전쟁의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위기의 순간에 사람의 본성이 드러난다. 요즘 들어 몇번 그런 경험을 하고나니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온전히 믿지 않게 되었다. 나또한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마음일지라도 그간 살아왔던 사고방식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어느 정도 반영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누구를 비난하거나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재에 충실하지 않으면, 자신을 꾹꾹 눌러 다스리지 않으면 그 결과의 여부에 절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과는 현재의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죽은 뒤에도 그 평가가 이어진다는 사실이 무섭게 느껴진다. 

 

'사방이 비와 죽음이다......'(301쪽)

 

  내 주변의 배경을 무엇으로 만드느냐는 나에게 달려있다. 적어도 추악하고 부조리한 진실을 만들어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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