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2
메도루마 슌 지음, 유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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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속에서 나는 죽음을 맞이했는데 정신만은 또렷해 이상한 광경을 끊임없이 봐야했던 꿈. 너무도 생생해 ‘꿈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다 깼다. ‘다행이다.’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지만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꿈속에서조차 간절히 바랐던, 현실에서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런 두려움과 직면해 버린다면 어떤 기분일까? 도쿠쇼는 기이하게 부어버린 오른 다리를 마주하고는 두려움보다 짜증이 앞서고 말았다. 정신은 또렷한데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꿈에서 마주했던 기이한 현실과 또렷한 정신. 내 보기엔 도쿠쇼는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물방울』이란 제목만으로 소설의 내용을 추측하기 어렵다고 생각을 굳히기도 전에 이상한 병에 걸린 주인공 도쿠쇼의 발끝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진료소 의사도 석회질이 많은 그냥 물이라고만 할 뿐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일도 있을까?’ 란 의아함을 가지면서도 능청스러운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책을 읽어나가면서도 거부감보다 호기심이 일었다. 주인공의 발끝에서 물이 나와『물방울』이란 단순한 제목을 붙였을 리가 없다고 생각할 즈음, 도쿠쇼의 발 끝에 떨어지는 물을 받아먹는 군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당한 부상을 입은 군인들이었는데 도쿠쇼는 그들 중 자신의 친구를 알아보고는 오키나와 전투 때 자연 방공호에서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심하게 부어오른 다리, 발 끝에서 나오는 물, 그 물을 받아먹는 군인, 그 가운데 만난 친구. 발끝에서 나오는 물은 분명 깨끗한 물의 이미지가 아님에도 용서를 구하고 내면 깊숙이 자리했던 죄의식을 떨쳐버리며, 나중에는 기이한 효과를 맛보게 하는 신기한 물로 희화된다.
 
두 번째 단편『바람 소리』도 서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전쟁에 동원되어 다가올 죽음 앞에 무방비로 놓은 젊은이의 두려움을 그려냈다. 풍장터에 놓인 해골에서 나오는 구슬피 우는 소리의 원인을 알려 전쟁의 참상 및 마을을 홍보하려는 자와 그 시신에서 만년필을 훔쳐 온 자, 같이 전쟁에 동원되어 자신은 살고 죽음의 두려움 앞에 노출되었던 한 청년의 이야기. 끝내 해골의 신원도, 만년필의 되돌려짐도, 해골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군국주의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한 젊은이의 울음소리를 통해 한(恨) 맺힌 수많은 사람들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해설에서는 ‘죽으러 가는 한 젊은이의 불안과 공포의 크기를 작가는 관자놀이에 난 총알구멍으로 표현했다.’고 되어있다. 해골의 눈으로 들어와 관자놀이의 총알구멍으로 빠져나가는 ‘바람 소리’는 남겨져 있는 자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다.
 
마지막 단편『오키나와 북 리뷰』는 저자의 기발함을 가장 난해하면서도 독특하게 풀어낸 소설이었다. 리뷰의 형식을 빌려 쓴 단편소설이라는 사실도 독특하지만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책 제목 속에 황당하면서도 때론 진지한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것이 기발했다. 북 리뷰를 통해 두 인물의 일대기를 보여주며, 오키나와를 알려주는 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의견을 슬그머니 올려놓는 구성에서 저자의 유머까지 함께 맛보았다.
 
세 편의 단편을 마주하면서 공통으로 만나게 되는 공간적 배경은 ‘오키나와’였다. 오키나와의 역사를 알면 이 세편의 실린 단편을 좀 더 깊이 있게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남쪽에 자리한 오키나와 현은 휴양지와 장수 마을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의 오키나와 현이 되기까지의 역사를 되짚어 간다면 지금의 아름다운 이미지만으로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류쿠국’으로 오래된 독립국가로 존재했었고 제2차 세계대전때 일본에서 유일한 지상전에 휘말려 들면서 27년 동안 미군의 통치를 받았다고 한다. 그곳의 세계평화기념 기념비에는 23만 6천 명의 희생자 이름이 적혀있다고 한다. 1972년 일본에 복귀되긴 했으나 온전히 일본의 땅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1960년에 오키나와에서 태어난 저자는 왜 이렇게 기발한 소설을 통해 오키나와를 드러내는 것일까? 과연 1945년에 끝난 전쟁이 온전히 끝났다고 볼 수 있을까?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땅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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