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재앙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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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콩쿠르상, 나오키상, 이상문학상 등 매년 주목하게 되는 문학상이 있다. 최근에는 퓰리처상까지 눈여겨보는데 비록 퓰리처상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후보에 오른 작품에도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그런 연유로 2009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라 경합을 벌인 『비둘기 재앙』이 번역되었다고 하기에 단박에 관심이 갔다. 두툼한 두께감에 살짝 부담이 가긴 했으나 어떤 작품인지 궁금했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무척 집중해서 읽게 되었는데, 이야기에 빠져들면서도 복잡하게 전개되는 구조에 더 긴장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계도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고 거미줄처럼, 실타래처럼 엉켜드는 인물 구조에 정신을 못 차리면서 이야기에 조금씩 매료되어갔다.
 

  인디언 소녀 에블리나는 할아버지 무슘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한다. 1911년 백인 일가족이 살해되고, 살아남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간 인디언 가족이 오해를 당해 처형되는 사건이 이 책의 핵심이었다.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 듣게 된 이야기는 나무의 잔뿌리처럼 뻗어가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과 얽히게 된다. 에블리나의 시점에서 시작해 인디언 부족 판사 쿠츠 이야기, 인디언은 치료하지 않은 여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구술문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무슘 할아버지가 말한 사건의 진실은 물론 시간을 넘나들며 많은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총 8개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연관성 없이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지막에는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이야기 속에도 무수한 이야기가 들어있고, 화자도 제각각 달라 처음엔 이 이야기가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로 아우러지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씩 인물들이 겹쳐 들어가긴 했으나 그 이야기를 꼼꼼하게 정리하기란 무리였다. 그래서 아예 관계도를 잊고 이야기의 흐름에 집중하자 잘 읽히고 흥미롭기까지 했다. 인물들이 얽히는 노선을 잘 알고 있으면 읽는 재미가 더하겠지만, 인물파악을 과감히 포기하고 이야기를 중점에 두니 관계도에 묻혀버린 이야기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에블리나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추적해 '정교한 거미줄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하는데 '관계가 너무 얽히고설켜 지우고 지우다가 종이에 구멍이 뚫린 이름도 몇 개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에블리나처럼 이 책의 관계도를 그려보진 않았지만 나의 심정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반가우면서도, 오히려 복잡한 관계도를 트릭으로 내세워 중요한 내용을 감추려 하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새로운 발견이었다.

 

  이렇게 많이 쏟아지는 이야기가 하나의 소설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많이 들어는 봤지만 정작 잘 알지 못하는 인디언 문화에 이질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다를 뿐, 지구 반대편의 사람 사는 이야기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짜 같은 인물들도 있고, 진실을 파헤쳐가는 이야기, 우리의 옛 전설처럼 흘러 내려오는 이야기 등을 통해 뿌리는 다를지라도 그 땅이 가지고 있는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책 속의 인물인 빌리는 '이 땅은 내 가족의 땅, 인디언의 땅이었어. 다시 그렇게 될 거야.'라고 말하는데, 그런 자조적인 말투에서 또 다른 역사를 듣는 듯 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홀리 트랙이라는 소년의 교수형과 연관을 맺고 펼쳐졌는데, 진실의 근원은 위로 한참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결국 진실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얽혀있는 인물처럼 시대를 오가며 펼쳐놓은 이야기들은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하고, 신비로우며, 삶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적나라했다. 오해가 만들어낸 사건으로 인디언과 백인 사이의 미묘한 문제를 들이밀 수도 있지만, 인디언 구역에서 살아왔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듣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고 싶었다. 이 책을 통해 삶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관계를 맺으며 한치 앞도 모르는 미래를 향해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를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띄엄띄엄 드러내는 이 책에 대한 단상이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나의 뇌리에 잔여물처럼 남아있다. 하지만 이질적인 문화와 삶을 통해 색다를 세계를 여행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소설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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