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우보이
존 레이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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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지진으로 전 세계가 불안에 떨고 있다. 가장 먼저는 지진으로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고, 그것도 모자라 방사능 유출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놓인 일본 열도가 불안감이 가장 크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상황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그들에게 온정의 손길이 끊이지 않고 어서 빨리 불안감이 가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정말 기적이 일어나 암울한 이 현실을 희망으로 바꿔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지진이 일어난 상황을 보면서도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눈으로 모든 것을 봐도 믿겨지지 않는데, 하물며 혼자서 읊어대는 말들을 믿을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로우보이'처럼 어떤 현상에 관해 경고를 하는 말을 터무니없다고 지금껏 무시해 온 것은 아닐까? 왜 이제야 갑자기, 로우보이로 불리던 소년이 생각이 난 것일까?

 

  『로우보이』를 만난 것은 작년이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만난 느낌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의 아량으로는 로우보이 윌리엄 헬러를 이해하기란 역부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열 시간 후에 세상이 곧 멸망할거란 소년의 말에 과연 귀를 기울일 수 있었을까? 그것도 이제 막 정신병원의 감시를 벗어난 소년의 말을? 아마 로우보이의 배경을 알고 실없는 소리를 한다고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로우보이가 곁에 있는 양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치부하면서도 점점 뜨거워지는 세상이 멸망할 징조를 발견했음에도 사람들은 소년의 배경을 보고 믿어주지 않았다. 윌을 걱정하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정신분열증의 영향으로 아들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엄마와 윌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까 걱정하는 특수 실종계 수사과 라티프 형사만이 윌을 쫓고 있었다.

 

  실제로 저자는 지하철에서 대부분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로우보이란 별명을 가진 윌은 지하철을 배경으로 하는 모습으로 자주 나온다. 지하철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것을 통해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투과시켜 주기도 한다. 특별한 방법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윌은 세상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막으려는 사명이 자신에게 있다 생각한다. 그런 과정 속에 윌의 과거와 세상을 구할 방법, 그가 만나게 되는 맨해튼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기도 한다. 윌은 자신이 세상을 구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에밀리란 소녀를 찾아간다. 유일한 친구를 찾아가는 거라 생각했지만 에밀리는 윌을 보며 기겁한다. 2년 전 사건으로 윌이 정신병원에 가게 된 만큼 에밀리의 불안감을 이해할 수도 있었으나, 윌의 진심을 알아줄 만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자신을 쫓고 있는 엄마와 형사에게 발견되어도 상황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윌이 마주하게 되는 현실 속의 세계는 때론 환상적으로 비춰지기도 하며, 자신 만의 세계에 깊이 빠져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품게 되는 배경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조금씩 윌을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되었다. 이 소설의 최고의 반전은 윌의 주장대로 이뤄지는 현실을 드러내는 결말이지만, 그 전에 엄마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를 쫓는 형사 라티프가 윌의 과거를 알아가던 중 밝혀지게 되는 엄마의 비밀은 윌의 현재 상태와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갔다. 윌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불안감은 사라지고 그 아이의 내면에 들어있는 생각과 세상이 맞아 떨어질 것인지에 관심이 갔다. 저자는 그런 상황을 윌을 통해 몽롱하면서도 차근차근 전개시켜갔다.

 

  윌은 자신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취했다. 그러나 "너로 인해 멈춘 건 아무것도 없어."란 말만 되돌아 올 뿐이다. 그리고 "나는 소명을 받은 줄 알았어. 에밀리. 소명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태어난 이유가 없잖아." 라고 말한다. 윌은 과연 소명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그의 방법이 실패한 것일까? 그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결말 앞에 망연자실 하면서도 윌을 진중하게 바라봐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나를 지배했다. 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윌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음에도 의구심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리기 바빴다. 그러다 아무도 이런 대재앙이 일어날 거라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자 진정으로 타인의 말들을(윌을 포함해서) 제대로 들어주지 못한 것에 깊은 후회가 일었다.

 

  어쩌면 일본의 지진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보며 윌을 떠올리는 것이 생뚱맞을 수도 있다. 이 책을 떠올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 스스로도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지만 왜 이렇게 마음이 아련한지 모르겠다. 마치 이웃나라 사람들의 고통이 내 탓인 양 마음이 아파오고, 윌 같은 소년이 곁에 있었다고 해도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억지후회를 갖다 붙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결과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더 마음이 아프다. 소설 속이든 현실이든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미미하게 비춰준다는 것이 못 견디게 미안하다. 더 이상 이런 고통들이 밀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세상이 평화와 행복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런 희망은 과연 소설 속에서도 현실 속에서도 불가능 한 것일까? 이런 말을 되뇌는 것만으로도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로 현실이 팍팍하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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