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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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을 하면 우스워져"
 

  이 소설의 첫 문장과 끝 문장은 동일하다. 얼핏 들으면 소설 속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이 말은 어느 정도 적용되는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 쉼 없이 재잘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머쓱해지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해 못할 말도 아니다. 그러나 헤르타 뮐러가 말하는 '말'은 많은 것을 쏟아낸 뒤에 따라오는 허무한 '우스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살던 곳을 떠날 때 가져온 것들을 그들의 얼굴에 담는다.' 라고 쓰인 노트를 보는 '나'는 롤라를 추억한다. 그 노트는 롤라의 노트였고, 그녀가 어떻게 죽었으며 어떤 일을 당했는지가 적혀 있었다. 체육교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나'의 트렁크 안에 있던 허리띠로 목을 맨 롤라. 그런 롤라는 당에서 제명당하고 학교에서는 그런 그녀를 수치스러워해 제적시킨다. 롤라의 죽음에 의문을 갖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말을 못한 채 학교가 시키는 대로 이끌려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구내식당에서 세 남학생이 말을 걸어온다. 똑같이 롤라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이 만남으로 그들의 인연은 훗날까지 이어지는데, 마치 롤라의 죽음이 암시를 하듯 그들도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나와 세 남학생인 에드가, 게오르크, 쿠르트는 정권에 비판적이었고 종종 독일에서 밀반입한 책을 보기도 했다. 비밀경찰의 감시자가 된 네 학생의 운명은 편치 않았다. 어디를 가든지 비밀경찰의 감시가 있었고, 친구마저도 감시자의 역할을 하는 끄나풀이 되어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앞길을 막아 버리는 데에는 그들이 처한 정치적인 운명만큼이나 암울했다. 무슨 일을 하던지 정치적인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하다못해 가정교사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게오르크는 의문의 폭행을 당한다.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신고를 한 당사자를 더 비웃을 뿐이다. 그런 그는 출국허가를 받았음에도 한 건물의 옥상에서 떨어져 즉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쿠르트도 집에서 목을 맸다. 롤라, 게으르크, 쿠르트의 죽음을 자살과 사고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들 앞에 펼쳐진 암울한 상황만큼이나 어두운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도 실컷 뛰어놀았으니, 이제 네 마음짐승을 쉬게 하려무나'

 

  할머니는 노래한다. 마음짐승을 쉬게 하라는 이유에는 '오늘도 실컷 뛰어놀았으니'라지만 이들에게 마음짐승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방황하는 청춘이라고 하기엔 낭만적이지 못한 현실이 있다. 절망이라고 하기엔 일으켜 줄 희망이 없다. 구내식당에서 본 냉장고 속의 짐승의 내장에서 마음짐승을 보았다고 하는 '나'의 고백 속에도 '구부러지고 지쳐 있'는 짐승의 내장이자 마음짐승을 본 것이다. 또한 죽은 아버지의 마음짐승이 미친 할머니 안에 둥지를 틀었다고도 생각한다. 마음짐승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존재일까. 아니면 단순한 단어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를 비롯한 네 명의 학생이 만나서 한 테이블에 앉아있을 때에 가져온 두려움이 그대로 각자의 머릿속에 머무르듯 그렇게 마음짐승은 각자의 마음속에도 둥지를 틀었으리라.

 

  『마음짐승』은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소설이라고 한다. 독재치하의 루마니에어서 청년기를 보낸 저자는 두 친구를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두 친구의 죽음은 이 작품속의 롤라, 게오르크, 쿠르트의 죽음과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제대로 펼치지 못한 청춘, 시대의 암울함도 아마 저자의 경험에서 나온 생생함이었으리라. 독재치하를 벗어나도 자유롭게 살수 없는 그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곳에서 인간은 인간다운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각자의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던 인간미를 볼 수 없고, 암울했던 시절을 살아했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 그들을 그려내는 저자의 언어 또한 혼란스럽다. 한 문장씩 읽어 내려가면 수려한 문장인데도, 하나로 연결하려고 하면 혼선이 일고 어렵게 느껴졌다. 그런 언어의 혼잡함 속에서도 희망을 보길 바랐는데, 과거에 존재해왔고 현재도 존재하고 있는 가깝고도 어두운 세계를 실컷 맛본 기분이다. 하지만 그것을 기록해 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에서 용기를 얻는다. 무언가를 개선하려는 의지, 인간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다는 욕망이 저자의 글 속에서 뚝뚝 흘러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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