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마리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5
캐럴린 메이어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한 소녀가 있다. 언니와 동생, 엄마와 함께 생활하는 소녀는 가난하다. 삶이 너무 힘든 엄마는 늘 술에 절어있지만, 세 딸을 발레 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앙투아네트, 마리, 샤를로트는 각자가 가진 발레 능력도, 꿈도, 삶의 방식도 모두 다르다. 이런 세 자매의 이야기가 좀 더 화기애애하게 펼쳐졌으면 좋으련만. 너무나 가난하고, 배고프고, 서글픈 이들의 현실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가난 때문에 춤을 출 수 없을 지경에 이름에도 엄마는 술을 마시고, 앙투아네트는 대기실에서 부유한 남자들에게 접근하고, 샤를로트는 배고픔에 허덕였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벅찬 현실을 마리는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마리에게는 춤이 있었다. 그리고 에드가 드가의 모델이 되면서 작품 속에 남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저자가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의 조각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고 이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소설 속에서 에드가 드가의 역할이 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리의 삶을 더 농밀하게 그려냈고, 에드가 드가는 '너를 에투알(스타)로 만들어 주마.' 라는 최종적인 목적에 기여를 했다. 물론 마리가 에드가 드가의 모델이 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에드가 드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에투알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이 책은 에드가 드가의 역할보다 마리가 어떻게 에투알이 되는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역경을 딛고 에투알이 되는 방법이 아닌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의 조각 속의 진정한 에투알로 남는 과정이었다.

 

  소설의 중반부까지 마리가 발레를 할 수 있고, 에드가 드가와 만나고, 힘든 상황에서도 조금씩 나은 미래를 향해 가는 마리의 모습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일었다. 빤한 결말일지라도 그렇게 조금씩 밟아 나가다보면 에드가 드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훌륭한 에투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리에게 주어진 상황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 불행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닌가란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 수많은 일들을 이겨내는 가운데, 언니 앙투아네트로 인해 승급시험을 준비할 수 없을 때에도 시험장에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기적마저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리에겐 더 이상 삶의 희망이 없어 보였다. 알코올 중독이 심해지는 엄마, 점점 어긋난 길로 가는 언니, 뒷받침해 줄 수 없는 동생, 그리고 마리 곁을 잠시 떠나 있는 장 피에르는 그런 마리를 더욱 힘들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리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모든 희망이었던 발레는 그녀를 다른 세계로 밀어내 버렸다.

 

  마리에게 발레가 없다면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까. 공장의 노동자가 되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어도 그것은 마리도, 마리의 아빠도, 선한 의도는 아니었더라도 마리의 엄마도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마리가 발레를 관둘 수밖에 없었을 때는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기분이 들었다. 마리가 힘들게 꾸려온 삶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마리의 선택이라고 해도 장 피에르를 따라가지 않은 것, 언니의 불행한 최후는 마리의 삶을 더 암울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샤를로트가 무용수로서의 꿈을 활짝 펴 기대에 부응을 해주었으나, 마리도 그런 삶을 향해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그렇다면 도대체 에드가 드가는 마리에게 허튼 약속만 한 것일까. 마리를 에투알로 만들어 준다고 했는데, 마리의 삶은 에투알과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분명 에드가 드가가 마리에게 했던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발레와는 먼 길을 가고 있는 마리가 에투알이 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마리가 에드가 드가의 모델이 되었던 작품이 완성되면서 약속은 지켜졌다. 바로 작품 속의 열네 살 소녀로 영원히 남게 된 것이다. 튀튀까지 입고 툭 건들면 뻗어 나올 것 같은 생생함이 살아있는 마리의 모습. 아름답게 발레를 하는 모습이 아니라 피로에 쌓인, 지쳐있는 모습일지라도 마리는 에투알이 되었다. 그것도 한 순간에 사라지는 에투알이 아니라 에드가 드가의 작품으로 영원히 남아 있는 진정한 에투알이었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할 때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방식에서 벗어나면 실패라고 생각했다. 마리가 발레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실패자이고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생각은 이미 내가 경험으로 체득한 극단적인 생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에드가 드가의 작품을 통해 저자는 다른 방식으로 마리를 에투알로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회자되고 있는 마리의 모습을 어찌 실패자라고, 희망 없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마리를 통해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방식을 벗어났다고 해도 섣불리 실패자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과 다른 방법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것은 마리가 발레리나로 성공하는 것보다 더 큰 울림을 주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희망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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