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와 클라라
필립 라브로 지음, 박선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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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되면 다른 계절에 비해 유난히 더 쓸쓸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현실에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로맨틱한 연애를 꿈꾸기도 한다. 나이 서른에 아직도 그런 꿈을 꾸냐며 면막을 주는 지인들이 있지만 나의 내면에는 여전히 그런 로망이 남아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잘 건드려 주었던 소설은 『프란츠와 클라라』였다. 쓸쓸한 이 겨울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와 준다면, 소설속의 인물처럼 그것이 어린 소년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와의 소통이 그리워지는 계절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사한 봄 날,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맡고 있는 클라라는 혼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음악당 근처의 호숫가로 향한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후, 사람들을 피해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면 그녀의 지정석인 벤치에 앉아 간단한 점심을 먹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자리라고 생각했던 자리에 한 소년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소년의 등장이 반갑지 않았지만 그녀를 지켜보았다며 조금은 당돌하게 말을 건네 오는 애 어른 같은 소년 프란츠. 근처의 학교에 다니는 프란츠는 그렇게 점심시간마다 그녀의 벤치로 찾아온다.

 

  분명 그런 프란츠가 달갑지 않았지만 클라라는 조금씩 프란츠를 궁금해 하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때로는 웃음이 나올 것 같은 진지함, 자신만만한 모습 뒤에는 12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스무 살인 클라라도 왜 이 소년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때론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마음의 상처가 가득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클라라에게는 아버지의 죽음, 실연이 있었고, 프란츠에게는 어두운 가족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공통점이 있었기에 나이차를 느끼지 못하고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때론 얘기치 않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 마음을 털어 놓을 때가 있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건드려주고,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숨겨왔던 마음을 펼쳐 놓게 된다. 클라라도 아마 처음엔 어려 보였던 프란츠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애 어른 같은 프란츠의 진정함에 마음을 열게 되었지만 프란츠가 사랑 고백을 해 오자 그를 밀어낸다. 아무리 마음을 잘 다독여주었다고 해도 이제 막 소년으로 접어든 프란츠를 밀어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리고 클라라는 지역 오케스트라에서 솔리스트 길을 밟기 위해 런던으로 떠난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녀는 보스턴에서 솔리스트로서 성공해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연 도중 객석에서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는 강렬한 시선을 느끼는데, 아니나 다를까 분장실로 찾아온 건실한 청년은 프란츠였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찾아와준 프란츠를 보면서 빤한 스토리일지언정 괜히 내가 더 가슴이 뛰었다. 이제 나이차로 프란츠를 밀어내는 일도 없을 것이고, 12살의 모습이 아닌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난 프란츠도 당당했다. 그들의 재회가 내심 기뻤고, 행복한 결말로 어서 달려 나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프란츠가 클라라의 마음을 향해 던졌던 말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지금을 위한 말들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애 어른 같은 프란츠가 좀 더 다른 상황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랐고, 그런 바람은 십년 후에 이뤄졌다. 그리고 그들을 방해할 걸림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십년 후에 재회할 수 있었던 것에는 마치 영혼이 통하듯 그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치유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남겨진 결말은 한참을 책장을 붙들게 만드는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그들의 재회를 바라보면서 내가 10년 전에 만났던 어린 소년이 지금 나타나준다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듯한 아픔. 그래도 그들이 함께 한 시간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잘 견뎌주길 바랐다.

 

   성장소설 같기도 하고, 사랑소설 같기도 한 이 소설은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프란츠와 클라라가 빚어내는 독특하지만 평범한 삶의 단면을 보여준 것 같다. 그랬기에 나의 철없는 로망을 충족시켜주었다는 것보다 이러한 사랑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당장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마음, 사랑할 수 있는 삶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 생각을 얻어낸 것만도 감사해하며, 마지막 장의 여운을 남긴 채 조용히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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