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만드는 소년 - 바람개비가 전하는 치유의 메시지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폴 플라이쉬만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유난히 책이 읽어지지 않는 날이면, 읽던 책을 잠시 덮고 책 사냥에 나선다. 책장에 꽂힌 700여권의 책을 보면서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책을 골라내는 것이다. 읽어야 할 책이 700권이 넘는데도 책장을 둘러보면서 한다는 말이 "읽을 책이 없네."였다. 과연 이 말을 다른 사람이 들으면 뭐라고 생각할까 싶다가도, 정말 그렇게 느껴지는 기분을 어째야 할지 몰랐다. 읽을 만한 책을 서너 권 골라낸 다음에 몇 페이지씩 훑어보며 그 날에 읽을 책을 추려낸다. 그 과정에서 당첨된(?) 책은 <바람을 만드는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선택된 책도 내 마음을 채우지 못했고, 50페이지 정도 읽다 책을 덮고 잠을 청했다.

 

  출근길에 어떤 책을 가져갈까 잠시 고민하다 어제 읽다 만 <바람을 만드는 소년>을 집어 들었다. 강한 흡인력은 없었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했다. 잔잔하다 못해 심심한 이야기로 비춰질 정도였는데 왜 그 책을 놓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한 소년이 속죄 여행을 통해서 치유되는 과정을 보며 간접으로나마 치유할 거리를 찾았었던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브렌트처럼 혼자서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게라도 걷기 여행을 해보고 싶었고, 여행을 통해 내 마음 속의 고통을 모두 게워내고 싶었다. 브렌트처럼 교통사고를 일으켜 사람을 죽게 만든 큰일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비워내야 할 번뇌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 나를 짓눌렀다.

 

  고등학교 2학년인 브렌트는 아버지의 승진으로 이사도 오고, 사립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자신만만하던 브렌트의 인생이 달라진 것은 파티에서의 모욕 때문이었다. 부자친구들이 여는 파티에 따라 갔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모욕을 당했다. 그 길로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너무 괴로운 나머지 자살을 시도했지만 정작 애먼 사람만 죽게 만들고 말았다. 음주운전에다 사고로 사람까지 죽게 했으니, 브렌트는 하룻저녁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셈이었다. 자신 때문에 죽게 된 소녀 또한 자기 또래였고, 모범생에다 다재다능한 유망주였다. 집에서 칩거만 하고 있던 그에게 내려진 처벌은 감옥행이 아니라 속죄 여행이었다. 피해자 측 어머니는 버스표를 주면서 평소에 소녀가 좋아했던 바람개비를 만들어 미국의 네 귀퉁이에 세워달라는 부탁을 했다. 브렌트도 현재 상태로는 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기에 그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고 버스 여행을 떠난다.

 

  손재주라곤 없는 브렌트가 어떻게 바람개비를 만들 것이며, 혼자서 여행을 해 본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 일을 마무리 지을 것인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죄책감과 절망감에 깊은 상실을 한 브렌트에게는 오히려 그 여행이 숨통을 틔워주는 일이기도 했다. 여행에 필요한 도구대신 바람개비 만드는 방법이 담긴 책 한 권과 다양한 연장을 가방에 담고 길을 떠났다. 시카고에서 출발한 브렌트는 미국 지도로 봤을 때 정말 네 귀퉁이라 생각될 장소에 바람개비를 만들어 세웠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다니게 되었고, 내륙에 살고 있던 그에게 바다는 세상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에서 브렌트는 때와 장소에 따라 자신을 속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면서 바람개비를 만들었다. 한 개씩 만들어 갈 때마다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고, 자신 때문에 죽은 소녀의 형상은 바람개비 위에서 점점 비슷해져 갔다. 분명 속죄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바람개비였는데, 브렌트의 그런 행위로 인해서 또 다른 사람들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브렌트가 바람개비를 한 개씩 만들고 지나갈 때마다 그 바람개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특별한 사연이 펼쳐졌다. 얼핏 브렌트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 인 것 같아 살짝 지루해지곤 했는데, 그들의 삶 속에서 바람개비를 바라보는 것이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 명의 특별한 사람이 비춰졌는데, 모두 팍팍한 현실에서 바람개비로 인해 힘을 얻고 희망을 갖고 있었다. 어떤 소녀에게는 사랑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방황하는 청소부 아저씨에게는 안식을, 부모의 기대에 버거워하는 입양아에게는 또 다른 길을, 생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할머니와 손녀에게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그 일이 브렌트가 만든 바람개비를 통해서 일어났고, 브렌트는 그 일을 알지 못했다. 오로지 자신 때문에 죽은 소녀를 위한 행위였고, 죄책감이 사라질 리 만무하지만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고 싶었다. 그랬기에 그가 남긴 바람개비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할 틈이 없었다.

 

  브렌트에게는 바람개비의 완성도 중요했지만,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사색으로 인해 삶의 깨달음이 그의 마음속으로 쑥 들어왔다. 여행 목적을 숨기기도 했으나, 여행지에서 만난 화가의 집에 바람개비를 달고 나오면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던 사연을 이야기한다. 왜 바람개비를 만들고, 소녀의 형상을 집어넣고, 이름을 새기는지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브렌트는 편안함을 느낀다. 비로소 네 개의 바람개비를 완성했다는 후련함과 죽은 소녀에 대한 죄스러움이 조금씩 사그라들면서, 속죄 여행의 끝을 보았다. 또한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사라졌고,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을 통해서 좀 더 성숙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은-선하든, 악하든, 무심하든-보이지 않는 곳으로 물결치듯 퍼져나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브렌트에겐 그 행함이 어쩌다 악함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에는 선한 모습으로 낯모르는 사람들에게 퍼져 나간 것이다.

 

  브렌트가 속죄 여행을 떠나게 된 사실을 알고 책을 대했기 때문에 우울한 분위기의 연속일거라 생각했다. 사고의 순간을 부축이지도 않았으며, 죄책감으로 물든 브렌트의 내면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오히려 너무 잔잔하다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전개 되었다. 네 사람의 이야기가 드러났을 때는 흐름이 끊기는 것 같아 낯설었고, 전개가 뒤죽박죽인 것 같아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브렌트가 여행 경로를 따라 바람개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특별함이 없었지만 오히려 세세한 묘사로 브렌트가 '나'이게 했다. 마치 내가 브렌트가 된 양 여행하며 바람개비를 만든다 착각하고, 그의 여행이 끝났을 때는 많이 달라져 있는 그를 보며 뿌듯해 했다. 누구나 예기치 못한 실수를 하고, 고난 앞에 닥치기 마련이다. 브렌트가 그랬고, 그것을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보았다. 그럴 때 여행을 떠난 것이 다행이다 싶었고, 어떻게라고 올해는 짬을 내어 혼자만의 여행을 해보마 하고 다짐했다. 나에게 지금껏 그럴 용기는 잠재하지 않았지만 브렌트를 통해 약간의 자신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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