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스케치 장 자끄 상뻬의 그림 이야기 4
장 자크 상뻬 지음 / 열린책들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무기력감에 정신을 놓고 있을 때, 존재감의 상실에 몸부림을 칠 때 힘이 되는 한 마디는 "책 사줄까?"다. 그 말을 들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이 반짝 빛나며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요즘 내가 그런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친구가 그 말을 건넸다. 친구도 내가 책이라면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물었단다. 그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갖고 싶은 책 중에서 최근에 구입하려고 마음먹은 <파리 스케치>를 골랐다. 상뻬의 책은 모두 소장하고 있는데, 어쩌다 이 책을 놓쳐 버렸다. 책을 주문했다며 힘내라는 친구의 말에 기분이 한껏 고조 되었다. 책이 언제 오나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책을 펼쳐 들었다. 상뻬 책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져 사무실임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실없는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큼지막한 책에 펼쳐진 상뻬의 데생이 마음을 넉넉하게 해 주었다. 움츠러들고 강퍅해진 나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어, 상뻬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하나하나 찾아갔다. 상뻬의 데생을 보고 있노라면 주변의 것들은 다 잊고, 오로지 책 속에 펼쳐진 세계만 쳐다보게 된다. 니콜라 시리즈만 보다가 오랜만에 데생 집을 봐서인지 더 여유롭고 자유로운 세계를 만끽한 기분이다. 더군다나 <프랑스 스케치>에서는 고층 건물이 빽빽이 들어찬 도시를 표현하기보다 시골의 풍경이 더 많아서 나의 기분과 잘 맞아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시골이라고 해서 데생의 공간이 남아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편의 그림처럼 펼쳐진 자연이 보기 좋았다. 드넓게 펼쳐진 밭과 우거진 나무, 그 사이에 자리한 집과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푸근해지는 기분이었다.

 

  상뻬의 데생집이라고 해도 짤막한 글이나 대화가 있기 마련인데, <프랑스 스케치>는 글이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상뻬가 그려낸 세계를 독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느껴야 했다. 글 보다 한 편의 그림이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해 준다는 것을 알기에 맘껏 상상하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상뻬가 어느 배경을 그리던지 특유의 익살이 들어 있었고, 글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맘껏 표현하고 있었다. 드넓게 펼쳐진 시골 풍경에 수영장에 들어가 있는 젖소나, 마담 보바리를 읽고 있는 암탉은 익살을 자아냈고, 깜깜한 밤길을 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자전거, 들을 헤집고 와서 지나가는 기차에 손을 흔드는 모습은 흐뭇하게 만들었다. 간간히 끼어있는 도시 사람들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보는 것은 퍽 유쾌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서 그런지 상뻬의 데생 집 중에서도 유난히 <프랑스 스케치>는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다. 실제의 시골은 푸근하거나 평화롭기보다, 지루하고 단순한 삶 속으로 빠지기 쉬운데 <프랑스 스케치>를 보면서는 동경에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저런 곳에 살게 되면 내 삶이 좀 더 풍요로워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나는 사로잡았다. 자연 안에서의 고독도, 자잘한 불편함도, 여유와 평온함으로 모두 덮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느낌으로 드리워진 데생 때문에 동경의 눈빛을 보냈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상뻬가 그려 낸 삶은 특이할 것이 없는 행복을 바라볼 수 있었다.

 

  <프랑스 스케치>를 보게 됨으로 상뻬의 데생 집을 모두 모으게 되었다. 상뻬의 책을 처음 볼 때만 해도 그의 작품을 모두 모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막상 이렇게 한권씩 모아 주르륵 꽂고 보니 예상외로 뿌듯했다. 기분이 울적할 때,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꿈꿀 때 꺼내면 언제나 나를 위로해 주는 상뻬의 데셍 집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웃음과 해학과 유머가 늘 잠재해 있어 언제라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그래서 더 그의 작품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기다리게 되는 것 같다. 마음이 좀 힘들 때 선물 받은 책이어서인지, 유독 내 마음에 와 닿았던 <프랑스 스케치>. 봄바람이 더 따스하게 살랑 거리면 자주 꺼내서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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