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린이들 - 이기웅 사진집
이기웅 / 열화당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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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동안 힘겹게 쥐고 있던 책을 다 읽고 나면, 나에 대한 보답을 해주고 싶어진다. 그 보답이라는 것이 책장에서 읽고 싶은 책을 아무거나 꺼내서 읽는 것인데, 내 눈에 들어온 책은 이기웅의 사진집이었다. 사진 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지만, 전문 작가들의 사진을 볼 때면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드러내 보였을까봐,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할까봐(수많은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마찬가지만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걱정을 무시하고 있다.) 망설여졌다. 막상 사진집의 사진들을 보고 나니, 나의 염려가 헛된 걱정이었다는 것이 드러나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같은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기본은 보이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집이기 때문에 글로 인한 소통은 기대할 수 없었다. 다행히 소설가 조세희님의 머리말이 실려 있어, 이 사진을 찍은 시점의 사회적인 상황과 그들의 내면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진의 시대적 배경에 그런 모습이 숨어 있다는 것이 개탄스러워, 사진 속의 비춰진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 무척 대조되기도 했다.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나에게 그 시대의 배경을 상상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짧은 글 속에는 당시의 각박했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으로 인해서 내면의 무언가를 드러내고자 했던 당시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내게는 벅찬 일이다.

 

  무거운 마음은 잠시 밀쳐둔 채, 사진 속의 아이들이 어떤 모습인지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글로 인해서 마음이 무겁다고 사진을 보는 마음까지 무거워 지라는 법이 없었으므로, 편하게 사진집을 열었는데 초반부터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내가 보기에도 나의 어릴 적 모습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의 사진들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이 찍힌 시기와 장소를 책 뒤편에서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당시의 내 또래의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지역은 달랐지만, 나의 성장과 무척 비슷한 배경하며 모습에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사진을 넘기다 보니 내가 성장했던 지역의 근처에서 찍은 사진도 있어 어린 시절의 추억에 파묻히기도 했다.

 

  그 어린 시절 추억이라는 것은 촌스럽고, 지저분하고, 순수하다는 이름으로 가려진 또 다른 모습이었다. 멈춰진 사진을 통해 내면을 속속들이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순간의 표정과 같이 비춰진 배경으로 인해 아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 거의 나의 어린 시절을 제멋대로 대입해 짐작하는 것에 불과하더라도, 사진을 통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감이 나쁘지 않았다. 국내에서 찍은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현재의 내 또래이거나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일 터인데 현재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아이일 때의 저 모습을 간직하며 살고 있을까, 아니면 빛바랜 사진처럼 과거의 모습은 묵혀두고 현실에 찌들어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넘겨지는 사진은 사진 자체만으로 삶의 연속성을 거쳐 오는 것 같았다.

 

  국내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동질감이 가장 많았기에, 타국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껴지는 낯선 감이 없지 않았다. 같은 동양권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이질감이 덜했지만, 생김새가 완전히 다른 이국의 아이들은 그들의 과거를 추측하기란 쉽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아이들을 멋대로 상상하는 것은 쉬웠으나, 전혀 다른 문화권의 아이들은 그 모습만으로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마도 생활반경에 따른 문화와 다른 배경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 아이들의 사진을 볼 때는 사진에 찍힌 그대로의 모습을 보며 그 순간의 존재를 느껴갔다.

 

  그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과거와 미래를 추측하는 것이 어떻든 간에, 사진 속에 담긴 아이들을 보며 나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아이들의 삶을 되돌아보거나 미리 엿볼 수 없으니, 나의 삶을 회상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 회상으로 인해 현재의 나의 존재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진에 대한 글을 남기는 것이 애초부터 나의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뜻밖의 새로운 면을 찾을 수 있어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아무래도 꾸밈없는 사진을 찍은 작가의 시각과 사진속의 주인공이 순수함의 상징인 아이들이라는 것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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