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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이야기 1 - 세 어머니
시모무라 고진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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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이유 없는 짜증이 솟구쳤다. 원인 없는 짜증은 여기저기 화를 불러 일으켰고 급기야 내 자신이 무척 한심할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오늘도 어두운 얼굴로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었더니, 사람들이 나를 슬금슬금 피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퇴근 길에 서점에 들렀다. 컨디션이 최악일 때는 서점만큼 나를 위로해 주는 곳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역시나 책들을 바라보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구경하기 바빴다. 퇴근 길에 <지로 이야기> 1권이 재미있어 다 읽어 버렸는데, 서점에 오니 <지로 이야기> 2권을 사고 싶었다. 다행히 2권이 있어 구입하고 돌아오는 길에 또 읽었는데, 오늘 같이 짜증이 솟구치는 날 나를 위로해 주는 책이 있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꽤 두툼한 책임에도 순식간에 읽었다. 1권의 두께가 600페이지가 넘어 기가 죽을만도 하건만 지루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넉넉한 시간만 있으면 순식간에 읽어 버릴 수 있는 흡인력과 재미만으로 독자를 끌어당기지 않는 매력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지로 이야기>는 국내에 1989년에 번역 되었다가 교육운동사상의 길을 가르키는 교과서 같은 탓이었는지 널리 읽히지 못했다고 한다. 새롭게 출간 될 정도로 재 조명이 된 만큼, 일본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교육운동'의 열풍의 교과서 같은 소설이라고 불리우기도 한 <지로 이야기>는 도대체 어떤 내용들로 채워져 있을까.

 

  <지로 이야기> 1권 '세 어머니'는 성장 소설 냄새가 물씬 났다. 장르를 굳이 나눌 필요 없이 성장소설로도, 시대의 한 자락을 훑었던 책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1권에서는 '재미와 감동에 깨달음까지 얻을 수 있'는 교육철학서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로의 내·외적인 성장에 중점이 맞춰진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지 않을 수 없었다. 3남 중 둘째로 태어난 지로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초등학교 교지기 집에 양자로 보내졌다. 유독 지로만 유모에게 맡겨진 것이 못마땅했는데 유모 오하마, 낳아준 어머니, 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들어온 새어머니까지 세 어머니와 차례차례 맞물린 삶을 살게 된다. 유모의 집에서는 자유를 누리면서도 본가에 가면 자신을 미워하는 할머니, 어머니가 있어 늘 불편하기만 했다. 어렵사리 아버지 스케의 사랑으로 인해 마음을 붙이게 되지만 어려서부터 떠돌게(?) 되는 지로의 진정한 집은 과연 어디인지 헷갈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로만 유모네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본가를 오가기도 했지만 외가에서도 짧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낸 터라 지로의 진정한 집은 어디인지 혼란스러웠다. 지로가 방황하고 마음에 상처를 그득 안게 된 것도 어쩌면 정착되지 못한 '집'이라는 공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할머니와 어머니 때문에 본가에는 도저히 정을 붙일 수 없는 지로는 말썽쟁이에 어린아이답지 않은 까칠한 성격을 갖게 된다. 지로가 성장함에 따라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함께 세세한 내면의 묘사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복선을 깔아준다. 그러나 복선은 언제나 유쾌하지만은 않은, 지로만의 외로움과 고독, 분노가 시퍼런 날을 세워 세상을 향해 뿜어낼 준비를 하기 위한 것들뿐이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경험과 어우러지는 사고思考를 떠올려 볼 때, 지로가 어떻게 성장해 갈지 도무지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시선이 오히려 당연할 정도였다.

 

  책을 읽는 내내 나조차도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던 부분은 지로를 유독 미워하고 싫어했던 친 할머니의 독설이 펼쳐질 때였다. 지로가 다른 두 아이들과 다르긴 하지만, 성장배경을 생각해 볼 때 되레 마음을 써주고 귀여워 해줘야 할 마당에 깊은 상처를 넘어 분노를 일으킬 정도로 심한 차별을 했다. 1권이 끝나갈 무렵 지로가 큰 깨달음을 얻고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 때에야 할머니의 독선이 누그러지지만, 그 전까지 지로의 할머니를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었다.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엄마의 죽음, 유모와의 이별, 외가에서의 생활, 중학 시험 낙방 등 끊이지 않은 시련들이 있음에도 핍박과 독설은 그칠 줄을 몰랐다. 반면 지로가 크고 작은 일들을 겪고, 여러 사람의 가르침을 통해 성장해 갈 때면 무척 대견스러웠다. 지로의 성장에 따라 나도 조금씩 성장해 가는 기분이었고 지로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결코 순탄하다고 할 수 없는 지로의 성장과정(1권에서는 중학교 1학년까지 모습이 그려진다.)을 지켜보면, 어린아이의 삶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을까 하고 놀라게 된다. 지로만 동떨어진 배경에서 성장한 이유로 올바르게 자랄 수 없다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어느 누구에게도 정을 붙일 수 없었던(지로조차도) <지로 이야기>. 그러나 세상에는 지로를 미워하는 사람보다 사랑해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참 많았다. 그들로 인해 삶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고, 깨달음을 포함한 모든 것을 운명의 어쩔 수 없음과 당연함으로 받아들이더라도 자신을 늘 따라다니던 시련만큼이나 지로를 향한 사랑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어른으로 인해 상처받고, 어른으로 인해 사랑을 받는 모습이 역설적이긴 해도 범상치 않은 그림자는 늘 지로를 따라다녔다.

 

  지로는 날로 날로 성장해 갔다. 한 학년씩 올라갈수록 내면의 성장은 눈에 띄게 발전해 갔다. 때론 아이답게, 때론 어른답게 펼쳐지는 내면의 성장은 주변에 자신을 걱정해주고 사랑으로 훈육시켜주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어린 지로가 감당하기에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지로가 삐뚤어지도록 놔두지도 않았다. 형제들과의 우애는 물론 가족 간의 끈끈함을 만든 것도 지로의 영향이 컸고, 학교에서나 두 곳의 외가에서의 입지도 잘 다졌다. 그런 지로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나의 내면의 변화가 수 없이 일어났고, 세상을 향해 막 눈을 뜨기 시작한(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빨리 눈을 떴지만.) 10대의 내면은 현재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미 '지로'와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거나 겪고 있기에 드러난 익숙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지로의 성장과 행보에 여전히 관심을 두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고 여전히 성장 중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지로가 중학교 생활을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세상과의 부딪힘이 어떻게 내면의 성장을 이루어 낼 것인지 다음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진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지로의 성장을 통해 감동과 재미, 무엇보다 삶의 깨달음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질풍노도의 시기에 허덕이고 있는 청소년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검이 사람을 살리려면 먼저 자기부터 죽여야 한단다. 자신을 죽인다는 건 상대방을 죽이기 전에 자신의 나쁜 버릇부터 잘라낸다는 뜻이야. 그렇게 자신을 죽인 사람은 두 번 다시 사람을 죽일 수 없단다.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검은 이제 사람을 살리는 데만 쓰는거야. 5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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