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탑
전아리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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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저자의 프로필을 보고 있자니, 경계심이 인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데, 글 잘써, 얼굴 이뻐, 명문대 다녀. 완벽해도 너무 완벽해 잠시 할 말을 잃는다. 저자의 프로필에 유치한 경계심을 드러낸 것은 부러움 때문이다. 나와 같은 20대인데 이미 오래전부터 글을 썼고, 많은 상을 휩쓸었다는 부러움. 살짝 울적해 질뻔 했지만, 그런 터무니 없는 이유로 쓰러질 수야 없지. 나를 어떤 세계로 이끌 것인지 그녀의 글이 궁금했다. 프로필을 신경 쓰지 않으며 읽을 자신이 없었기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비장했다.
 

  책의 초반을 읽고, 골방에 갇혀 읽기에 적합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밝지 않은 분위기에 휩쓸리다 나까지 우울해지는 건 막고 싶었다. 조카가 치과치료를 받는 동안 읽으면 괜찮다 싶어 대기실에서 읽었다. 그런 곳이라면 책 내용이 우울해도 나까지 휩쓸리지 않을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마나 넋을 빼고 읽었는지 조카가 아프다고 울어, 그제야 책 속에서 빠져 나올 정도로 흡인력이있었다. 집에서는 읽지 않겠다던 다짐은 사라지고 집에 오자마자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웃기도 하고, 씁쓸해 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우울하지 않아 고마웠다. 도둑질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던 주인공 연이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내내 이런 분위기면 어째야 하나 살짝 걱정을 했었다. 소설의 내용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를 암흑 속으로 데려가지도 않았다.

 

  다른 남자와 떠나버린 엄마, 폐인처럼 지내는 아빠, 늘 부족한 것 투성이인 학교 생활에서도 연이는 담담했다. 자신의 상황이 못마땅하긴 했지만, 자학하거나 좌절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런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힘든 희망을 품거나,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는 나름대로의 절제. 그 절제 덕분에 첫인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풀고 이 책을 읽어갈 수 있었다.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은 연이의 성장을 통해 내가 이미 겪어온 과정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면 너무 고리타분할까? 10대의 고뇌를 생각해보려고도 했지만, 덤덤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즐기는 연이로 인해 편안한 구경꾼이 되었다는게 실은 더 맞는 표현이다.

 

  이 책에는 연이가 11살부터 19살까지의 온갖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연이가 성장할수록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아 시간이 흐르는 것에 심적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아빠와 훔쳐온 개와 그럭저럭 옥탑방에서 살아가지만, 연이가 딱히 마음 붙일 곳은 없었다. 연이밖에 놀아줄 사람이 없었던 병욱이나, 연이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같은 주택에 살고 있는 소영, 엄마가 일했던 미용실의 희정언니 정도만이 연이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소영은 처음부터 연이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목욕탕을 다녀온 후 친구가 된다. 소영의 부모는 이혼을 해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기에 오히려 연이가 더 삐뚤어지지 않을지 내심 걱정했었다. 연이의 주변 환경은 그 정도로 좋지 않았고, 소영은 그나마 가정환경이 참을만 했다는 것이 선입견으로 둘러쌓인 나의 시선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연이는 맹랑하게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갔고, 소영은 어긋나기만 했다. 나의 예상대로 흘러가주지 않은 스토리 때문에 우울하지 않았지만, 빤한 시선으로 지켜보던 나의 눈길이 부끄러웠다.

 

  어쩌면 밝지 못한 분위기 가운데서 내가 나름 밝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문체 때문인지도 모른다. 깊이 있게 들어가지 않았지만, 살짝 겉핥기를 하면서도 무언가 상큼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가볍지 않은 저자만의 독특한 언어 유희가 곳곳에서 느껴져 정신빼고 책을 읽다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어이없는 웃음을 뱉어내곤 했다. 짧막하면서도 사뿐히 걷는 듯한 상황 묘사들이 신선했다. 10대의 이야기라면 10대의 언어와 생각들을 잘 드러내야 하는 것도 한 요소가 되듯, 발랄함과 생동감이 언어에서 드러났다. 연이가 책의 중심에 있긴 하지만, 특별히 연이의 많은 것이 드러나 한 소녀만 바라보게 만드는 시점이 되지 않는 것도 10대를 향한 가벼운 들뜸인지도 모르겠다.

 

  10대가 영원할 것처럼 지루하던 시간은 흘러가고, 연이는 성장한다. 늘 붙어다니던 병욱이 남고를 가고, 아빠와 만나는 아주머니가 생기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연이에게는 새로운 변화라면 변화일까? 집을 나간 엄마가 죽음 앞에서도 처연할 수 있는 것도 성장의 바탕이 될수 있을까? 연이의 파란만장한 10대는 그렇게 저물어 가지만, 연이의 속마음은 구구절절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연이의 성장을 통해 독자에게 짐을 나눠 갖듯, 처량한 나의 10대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어느 누구의 삶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의 유년시절이자 모두의 유년시절은 그렇게 낱낱이 비춰지고 있었다. 무엇이 자신의 마음에 각인되었는지는, 잠시 과거를 떠올려 보며 찾아보는 것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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