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루즈-로트렉 - 열화당미술문고 206
장소현 / 열화당 / 1995년 6월
평점 :
품절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 나의 독서를 점검해 보니, 계획 없는 편중된 독서를 일삼은 사실이 드러났다. 편안한 독서를 하기로 했지만, 걸러서 책을 읽기보다 손에 쥐어지는 대로 읽은 책들이 많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다양한 장르를 읽기 위해 일부러 읽을 책을 정해 놓았는데, 올해는 그런 노력조차 없었다. 그렇다보니 올해의 독서에 아쉬운 면이 많다. 그 중에서도 미술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기 못한 것이 아쉽다. 그림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그림책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괜시리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그런 미안함이 가득할 때, 운 좋게 온라인 서점에서 미술 관련 책을 저렴하게 구입하게 되었다. 자주 읽지 못한 책들을 잔뜩 구입하고 나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그 첫번째 타자로 '툴루즈-로트랙'을 읽었다.

 

  내게 툴루즈-로트랙은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 생소한 화가였다. 이번 기회에 알아가자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지만, 의외로 낯설지 않았다. 19세기 중엽에 프랑스에서 활동을 해서인지, 다른 유명한 화가들도 많이 언급 되어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작품만을 보고 그를 온전히 판단할 수는 없는 법. 그의 삶과 결부시켜 그의 작품을 알아가자는 의도는 저자의 의도이기도 했다. 일화나 에피소드에 너무 관심이 쏠려 작품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흐려지는 일은 경고되어야만 한다고 말이다. 툴루즈-로트랙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전무했기에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더욱 더 궁금해지고 있었다.

 

  그의 작품을 말하기 전에 육체적 불행에 대해서 언급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안 사실이지만, 그는 10대 때 두 다리의 성장이 멈춰 난쟁이가 되고 말았다. 명문 귀족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두 번의 비극적 사고로 상체는 정상이고 하체만 기형적으로 짧았다. 사촌간에 결혼한 그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그의 다리의 결함은 가족간의 반응이 극적으로 갈라진다. 어머니는 그의 모든 것을 위로해주며 감싸고 돌지만, 그의 아버지는 외아들의 신체적 결함을 좋게 보지 않았다. 가정의 불화, 신체의 결함,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그를 구해준 것은 그림이었다. 자신의 다리가 그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거라는 고백처럼, 그림은 그에게 삶의 전부였다. 그의 그림에서 같은 시대의 화가인 고갱과 고흐처럼 현실과 이상이 빚는 갈등이나 비극적 좌절감을 찾아 볼 수는 없다고 했다. '현실을 자기 세계 속으로 끌어들여 다시 엮는 처지가 아니라, 현실 속에 자기를 내던지는 성향의 작가라 할 수 있'었다.

 

  로트랙의 그림에는 창부娼婦들을 모델로 그린 그림이 많다. 그는 어떤 여성에게도 위안을 받지 못했지만, 창부들의 세계에서는 자유로웠다. 자신의 몸 때문에 일부러 추행을 찾고, 염세주의에 기울어져, 화려한 홍등의 거리에 출입하게 되었다고 했다. 오히려 그곳에서 그는 약간 다른 사람으로 보일 뿐, 인간적인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그랬으니 그가 그런 생활에 젖어들었음은 물론이다. 그곳을 도피처로 삼아서 예리한 관찰을 한 것이다. 인생의 본질을 자연이 아닌 인간 속에서 찾은 것이다. 그래서 뛰어난 관찰 속에서 '느끼는 대로' 그린 그의 작품들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그렸다'는 말은 애매한 표현이라고 한다. 그가 개성을 표현하는 주무기가 과장이기에 그는 표현주의의 선구자였다.

 

  그의 인물 그림들의 얼굴을 보면 일그러져 있는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는 일부러 인간의 얼굴을 보기 싫게 그리려 한 것이 아니라 좀더 표현력을 풍부하게, 독특하게 그리기 위해서 애썼을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색보다 선의 화가에 더 가까운 로트랙의 그림들은 그래서인지 그림 속의 형태는 생생히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그는 알콜 중독으로 37세에 삶을 마감했다. 저자는 그가 만약 더 오래 살아서 그림을 그렸더라면 어떠한 화풍이 나올지 궁금해하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저자의 애정이 듬뿍 들어간,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간 로트랙의 삶과 그림은 그 안에서 드러나는 감정이 그대로 전이되는 느낌이었다. 한 권의 책으로 한 화가를 이해하거나, 그림을 만끽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생소해 마지않았던 로트랙을 이보다 더 진실되게 만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저자는 '삶의 무게와 팽팽히 맞서다가 결국은 젊은 나이로 죽어간 한 예술가의 모습을 통해서 오늘의 나의 모습을 되새겨 보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빌고 또 빈다'고 했다. 그런 저자의 바람이 많은 독자들에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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