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긴 침묵 - 개정판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운 겨울이면, 뜨뜻한 아랫목에서 간식을 먹으며 재미난 소설들을 읽기를 소망하게 된다. 추울 때는 밖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가만히 누워 책을 통해 다른 세상을 맛보는 것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소설이 지겨울 때면, 곧장 집어 드는 것이 산문집이다. 산문은 날씨가 스산해 질 때, 어울리는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변화를 좇으며, 흩어지려 하는 마음을 다잡아 보는 것. 반대로 변화에 따른 마음을 타인에게 의지해 보는 것. 그것이 산문을 읽는 묘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였을까. 여름내내 쳐다도 보지 않았던, 미셸 투르니에 책을 집어들었다. 올 초에 이 책을 읽다 만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 있는 책을 다시 집어 들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여기까지 읽었다고 표시해 둔 앞부분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책 한권을 읽으면서 두 세개를 만나는 느낌이랄까. 꾸역꾸역 꿰어 맞춰, 읽다만 부분부터 다시 시작해 나갔다.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을 두 번째로 접하고 나니, 그의 글이 조금 익숙하지만 더 광범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상의 자질구레한 것에서부터, 인간 본성의 깊이까지 파고드는 역량은 놀라웠다. 그가 철학 공부을 공부 했다는 사실이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자유자재로 가벼움과 무거움을 넘나들며, 사유를 유도하는 것은 미셸 투르니에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얘기를 꺼내면, 납득을 하기도 했고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쉽게 지나쳐 버리는 소재들에서 끌어내는 다양한 시선들은, 모든 것을 정지시키고 생각하기에 알맞았다. 책을 읽다가 잠시 멈춰서서 생각에 빠지기도 하며, 저자가 써내려간 글을 통해 다른 식으로 접근해 보기도 했다.

 

  이 책은 8가지 주제로 나뉘어 진다. 집, 도시, 아이들 등 어떻게 보면 쉽게 접하지만 깊이 있는 생각은 해 보지 않는 것들이다. 거기다 그렇게 광범위한 재료들을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가 더 난감한게 사실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을 피력하면 되는 것이지만, 왠지 주제만 살펴보면 하나의 정의가 만들어야 한다는 듯 살짝 부담감이 가기도 했다. 이런 경솔한 생각은 무너져 버렸지만, 주제를 정해놨다고 해서 그 안에서 국한되는 글들은 아니다. 묶음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도록 비슷한 이미지들이 들어가 있는 글들이었다. 또한 피상적인 연결들도 흥미로웠다. 예를 들자면 '손'이라는 글을 살펴보면, 인간에게 두 손이 달린 모습을 설명하면서 손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을 같이 드러낸다. 손이 우리의 신체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수음하다' 까지 범위를 두며 겉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다 거미에게 손의 의미를 부여할 때는 '몸에서 잘려진 채로 악몽 속에서처럼 재빠르게 움직이는 능력을 부여받은 메마른 작은 손을 닮았다' 라고 표현한다. 또한< 책>이라는 제목에서 저자는 '왜 쓰는가'의 대답으로 읽혀지기 위해 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 자신은 책이라고 하는 시장에 내놓을 이 제품을 방안에 들어 앉아서 만들고 있는 수공업자' 라고도 말한다. 이처럼 저자는 하나의 재료에서 사유를 맘껏 끌어내고 있었다.

 

  때론 너무 깊이 들어가는 그의 글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생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헤메기도 했다. 저자에게 익숙한 주제들을 말할 때는 그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었기에 멀뚱멀뚱 읽기만 하고 있었다. 훗날, 그때 미셸 투르니에가 한 말들이 다른 글과 연결 되어 깨달을지도 모르겠다. 설사 그럴지라도 산문을 읽는 재미는 사색하는 묘미가 있기에 모호함 속을 헤메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저자의 글은 방대하다. 마치 수 백년 된 나무처럼, 굵은 몸통을 두고 아래로로는 뿌리를, 위로는 가지를 마음껏 펼쳐 나가는 것 같다. 어떠한 가지와 뿌리를 만나든지 그것은 한 몸통에서 나온 것이면서 각자의 위치가 있으므로, 꼭 연결 짓지 않아도 된다.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며, 맘껏 흡수하며 가끔 다른 개체를 통해 이동을 하면 된다.

 

  이 책의 끝무렵에는, 번역가 김화영님과 미셸 투르니에와의 만남을 정리한 대담이 실려 있다. 대담을 통해서 저자의 집과, 저자의 글의 세계를 살펴 볼 수 있었다. 대담으로 인해 좀 더 다가갈 수 있었고, 머나먼 프랑스의 한 세제관에서 살고 있는 고령의 저자에게 친근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곳에서 글이 탄생하고, 사제관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꼈다고 생각하니 포근했다. 앞으로도 소설과 산문을 병행으로 출간하는 저자의 행보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머나먼 땅에서도 그를 기억하고, 그의 글을 만끽하며 사색에 빠지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면서, 늘 건강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