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소년을 만나다 세계신화총서 8
알리 스미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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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크레타 섬의 한 여인이 임신을 했다. 남편은 딸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 여인은 이시스 여신에게 기도를 했다. 이시스 여인은 응답을 해주었다. 딸이든 아들이든 괘념치 말고 키우라고. 딸아이라면 키울수 없다고 말하는 남편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은 딸을 낳는다. 이름은 이피스. 사내아이로 속여서 키웠다. 이피스는 명문가의 딸 이안테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식 날짜가 잡혔다. 크레타 섬의 축제가 될 만큼 둘의 결혼식은 기대로 부풀어 올랐다. 결혼식 전날 밤, 이피스의 어머니는 또 다시 신전에 가서 기도를 했다. 그랬더니 이피스가 남자로 변했다. 그렇게 둘은 결혼식을 치르고 이피스는 이안테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이 야기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의 <이피스 신화>다. 저자는 이 책을 내용을 <이피스 신화>에서 따왔다고 했다. 저자는 어떻게 이 신화를 현대 적으로 풀어냈을까.

 

    앤시아는 언니 이모겐의 소개로 대기업에 취직 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회사를 관둔다. 그러다 도시 곳곳에 날카로운 메세지를 남기는 로빈을 만나게 된다. 로빈의 메세지는 성적 소수자와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메세지였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다룬 글을 서슴없이 건물에 남기는 로빈을 마주한 순간 앤시아는 사랑에 빠진다. 그 옛날 이피스와 이안테가 그랬던 것처럼. 로빈을 만나기 전까지 무미건조한 삶을 살던 앤시아는 비로소 숨겨진 자아를 찾게 된다. 철저히 둘 만의 세계에서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이라고 해도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변화해 갔다. 가장 먼저 변화를 맞이한 사람은 이모겐이었다. 상사가 지시한 잘못된 일을 행하지 않고 내면의 소리에 의해 자유로워 진 것이다. 이모겐의 변화를 보며 저자가 따로 마련해 놓은 반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별이 바뀌는 반전은 기대하기 힘들기에 앤시아와 로빈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기대해 보려는 것. 그것이 현대에 어울리는 신화적인 풀이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피스 신화를 전혀 모른 상태에서 책을 읽었기에 처음엔 저자의 문체가 답답하다는 느낌 뿐이었다. 이 책은 색다른 문체로 씌여 있었다. 지금껏 마주했던 독자가 읽기 편한 문체가 아닌 저자의 이끔에 동행해야 다가설 수 있었다. 스토리를 훤히 꿰뚫어 보고 싶었던 나는 그의 문체가 흐름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다 앤시아와 로빈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시에 행해지는 낙서와 그들의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신화속에서는 동성을 인정할 수 없었던 사회이기에 남자로의 변신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동성간의 사랑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는 실정이다. 동성의 사랑을 말하기 위해 저자는 이피시 신화를 따온 것이 아닐까. 외적인 메세지는 앤시아와 로빈이 행할 운동으로 인한 새로운 변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적인 메세지는 동성의 사랑을 이해시키려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신화와 얽힌 현대사회의 이슈들은 그렇게 펼쳐지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세계신화총서라는 분류도 생소했지만 이 책을 꺼내들게 된 건 지인의 추천에 의해서였다. 나름 괜찮은 것 같다며 내게 건네준 책이었는데, 나는 온전히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못한 느낌이 든다. 동행하지 못하고 관찰자가 된 느낌. 현실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현실 속에서 가능을 염두하지 않았기에 동떨어진 세계로 치부해 버린 것일까. 하지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록 신화와 현대가 적절히 섞인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곱씹어야만 진가가 살아나는 이야기. 그것이 신화총서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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