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덕방 범우문고 116
이태준 지음 / 범우사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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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내의 현대문학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거창하게 현대문학을 운운하니 죄다 읽어 보고 논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지만, 몇 권의 신간을 읽고 나서 질려 버렸기에 과장된 표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에 읽은 현대문학들은 시대적인 이슈들을 등장 시킴으로써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성공했을지는 모르나, 완성도와 메세지 전달 면에서는 부족한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국내 문학을 또 다시 등한시 하려는 찰나 차라리 예전의 문학을 읽어보자 해서 꺼내든게 이태준의 단편집이다. 우리나라 단편문학의 황금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1930년대에 씌여진 이태준의 단편들. 나 또한 이태준이라는 작가가 낯선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가 월북해서 의도적으로 잊혀진 작가라는 사실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월북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문학에도 얼룩져 버린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한 작가의 잊혀짐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그의 작품은 대부분 1930년도에서 1937년 사이에 씌여진 단편들이라고 한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수필적인 요소가 짙고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얘기들로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해설자의 염려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또 다른 시선대로 힘없고 보잘것 없는 나약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바이다. 거기다 최재서님이 말한 이태준의 문학세계에 대한 견해도 책을 읽고 나니 정확한 표현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는 이태준의 단편을 읽으면 책 속의 인물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별 특징 없는 인물들이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 되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 또한 책 속의 인물들 중에서 생각나는 인물이 몇몇 있다. 형형한 눈빛을 지닌 불우 선생, 도둑이 된 윤선생, 술집 여인이 된 김씨, 신문 배달부 황수건 등 거의 모든 단편에 나오는 인물들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들은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제 3자에 의해 비춰질 뿐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에겐 생명력이 없는 것 같다. 그들의 의지대로 살아온 삶이라고 해도 독자에게 비춰지는 모습은 이미 지나버린 과거처럼 보였다. 과거가 달콤해도 현실은 팍팍하고, 과거도 팍팍하고 현재도 달라지는게 없는 삶은 씁쓸함이 짙었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현대 소설의 우울이 배어 나오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찌되었건 간접경험 밖에 할 수 없다는 시간적 배경의 어긋남 때문이었을까. 동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내가 느끼는 것이기에 현대 소설에서는 우울한 주제가 나오면 한없이 아래로아래로 처져 버렸던 것일까. 무엇 때문이라고 똑부러지게 얘기할 순 없지만, 이태준 소설속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현 시대에 없을거라는 착각에 소설 속의 인물들을 현재와 결부시키지 않고 따로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상만 다를 뿐 저자의 소설 속에 드러나는 인간군상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그런 이웃들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쾌락과 개인적인 즐거움만을 탐했기에 현대의 우울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소설 속의 인물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왜 그들의 슬픔만을 보았던 것일까. 즐거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도 많지만, 삶의 애환이 녹아 있기에 더 깊이 내면 속으로 들어 왔는지도 모른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얘기일지라도 한국문학의 자존심인 단편의 세계로 빠져보며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더불어 이태준이라는 잊혀져 가는 작가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며 그의 자리를 되찾아 주는 시간이 된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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